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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마람 Jul 09. 2024

조울증 환자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달콤한 육아휴직이 끝나고 남편은 출근을 했다. 생후 15개월이 된 아이는 남편의 복직을 앞두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빨리 어린이집에 보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남편은 나를 위한 일이라며 어린이집을 적극적으로 알아봤다.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해서 미안하고 속상했다. 요즘은 이 시기에도 많이 보낸다지만 엄마인 내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내 의견만 내세울 수는 없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현실을 파악하고 내려놔야 할 때도 있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나와 하루 종일 있는 것보다 어린이집 도움을 받는 것이 아이에게 나은 결정이었다. 아이는 갑자기 엄마와 떨어져서 당황했는지 눈물을 흘리며 등원하기 일쑤였지만 끝내 감내했다. 어느덧 일정한 적응 기간이 지나고 아이는 안정을 되찾았다. 부족한 엄마 품에서 잘 자라고 있는 아이가 기특하고 고마웠다.


어린이집에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아팠다. 40도가 넘는 고열에 축 처져 하원한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로 갔다. 수액을 맞고 기운이 나나 싶더니 결국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좀 더 빨리 왔어야 했나, 옳지 못한 내 판단으로 아이가 고생을 한 건 아닌지 심히 괴로웠다. 온갖 바이러스에 감염된 급성세기관지염이었다. 양손에는 주삿바늘과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꼽고 얼굴에는 산소호흡기를 하고 있었다. 중환자실까지 갈 뻔한 위험한 상황도 있었지만 다행히 고비를 넘겼다. 새벽마다 숨 쉬는 게 불편해서 깨는 아이를 돌보는 것이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취침 전에 정신과 약을 먹고 몽롱한 상태로 일어났다. 제정신이 아니어서 기억이 흐릿하지만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한껏 예민해져 아이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싶어 간호사를 여러 번 호출하기도 했다. 정신적으로 온전한 엄마였다면 아이를 더 잘 돌봤을까,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조울증을 앓고 있는 엄마로서 한계를 자각했다. 남편의 위로와 격려 덕분에 겨우 이겨냈지만 갈수록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는 3주가량 입원하고 퇴원했다.


“육아는 누구나 다 힘들어요. 너무나도 힘든 첫 경험이니까요. 병과 연관 지어서 불필요하게 자책을 하거나 자신감이 저하되지 않았으면 해요.”


내가 조울증에 걸린 엄마라서 육아가 힘든 줄 알았다. 어디다 털어놓을 곳이 없어 한동안 속앓이를 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C교수님은 내가 납득할 만한 답변을 해주셨다. 특별히 나라서 육아가 어려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아픈 엄마니까’라는 틀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것은 아닐까. ‘왜 나만 육아가 힘들지?’라는 의문이 들어 계속 답답했다. 아이를 붙잡고 펑펑 울기도 했는데 육아는 원래 힘든 거라니 힘이 빠지고 약간은 허무했다. 편견에서 벗어나 육아를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육아도 마찬가지다. 내 아이에게 잘 맞는 엄마라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여전히 매번 서툴고 더딘 엄마다. 매일 아침 기분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가끔은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 방향을 잃고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와 함께 지내며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육아하고 있는 나를 의심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나 자신을 믿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며 묵묵히 걸어나가고 있다. 


엄마는 아이 낳는 것을 선택할 수 있지만 아이는 엄마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 보이는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오은영 박사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의존적 욕구’를 가진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부터 보호, 사랑,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릴 때는 주로 부모가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의존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결핍이 되어 자존감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나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엄마가 아니라서 아이의 기본 욕구를 잘 채워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환경을 탓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지만 내가 조울증 환자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지금도 아이에게 가장 미안하고 안쓰러운 점이다. 


하루에도 빠르게 커가는 아이 앞에서 좌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떠한 면에서도 완벽한 엄마란 있을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여도 엄마마다 자신만의 단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연약한 엄마지만 아이를 대하는 자세와 육아 방식을 열심히 배워가고 있다. 우리에게 맞는 방법으로 소화해서 적용해 나가려 한다. 나와는 다르게 아이가 튼튼한 정신과 몸으로 성장해 나갔으면 한다. 훗날 아이가 내 병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자세하게 알려 줄 생각이다. 정신질환이 있는 엄마여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이만큼 더 노력하는 엄마였다고 생각했으면 한다. 만약 시간을 관장하는 신이 나에게 다가와 “한 번의 기회를 줄 테니, 아이가 없던 때로 돌아갈 것인가?“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아니요. 괜찮아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우리 아이를 낳을 것이고 후회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임신이 준비되었다는 말을 꺼냈을 때부터 정신과 약을 조절하며 보냈던 시간들. 임신하고 나서 들었던 유산 가능성. 안정기 이후에도 최소한의 약을 먹으며 하루하루 기분을 추적하던 일상.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정신과 보호병동에 입원했던 임신 8개월의 나. 출산 후 다시 마주한 우울증. 그동안 내가 겪은 일련의 과정을 써 내려가면서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 분명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속 쓸 수 있었던 힘은 ‘나를 위해 쓴다'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하며 내가 앓고 있는 양극성 장애라는 질병에 대해 전보다 자세히 알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내 기분과 감정에 솔직해졌고 불안하지 않아 일상을 조금은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살면서 질병으로 힘든 순간들이 또 오겠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비록 시작은 나를 위한 것이었지만 내 글을 통해 어떤 이유라도 임신, 출산, 육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감히 용기를 얻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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