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SPC매거진] 작은 한 알로 하루를 바꾸는 커다란 힘

“달걀이라도 넣어 먹어라!” 빠르게 한 끼를 때우려는 심산으로 라면물을 올리기 시작하면 아버지가 늘 외치던 소리였습니다. 영양이 부족한 라면에 달걀을 톡 하고 깨뜨려 넣으면 그제 서야 아버지 마음이 놓이셨나 봅니다. 돌아서면 배고프던 성장기 자녀를 둔 어머니의 가장 큰 고민은 저녁 반찬이었습니다. 대체로 그 고민의 끝에는 언제나 두툼한 계란말이가 식탁 위에 등장하곤 했습니다. 노란색의 탐스러운 계란말이는 고기보다 더 환호를 받는 단골 메뉴였고, 분홍색의 햄이라도 콕콕 박혀 있는 날은 두 그릇이나 밥을 해치우곤 했죠. 인생을 논할 때 먹는 것을 빼놓을 수 없고, 우리의 식생활에서 달걀은 빼놓을 수 없는 국민 음식입니다. 과연 작은 달걀 한 알이 품고 있는 힘은 무엇일까요?     



요리하는 사람의 손길에 따라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변할 수 있는 도화지같은 식재료가 바로 달걀입니다. 첫 번째 달걀 요리로 뜨끈한 달걀찜부터 출발해볼까요. 한국에서 인기 있는 달걀찜이라 하면 뚝배기 안에서 달걀 폭탄이 터진 것처럼 박력 있는 ‘폭탄 달걀찜’을 들 수 있습니다. 마치 부글부글 끓어 나오는 찌개를 연상케 하는데요. 한 입 먹으면 배 속까지 뜨끈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죠.      


우리와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는 달걀찜의 모양이 조금 달라집니다. 먼저 잘 섞은 달걀물을 몇 번이고 체에 걸러 최대한 곱게 만들어줍니다. 찜기 안에서도 흔들림을 최소화하여 기포 하나까지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일본식 계란찜은 ‘자완무시’라고 하여 푸딩처럼 매끈한 단면을 자랑합니다. 한국의 폭탄 계란찜이 식사 중간에 먹는 든든한 반찬이라면, 일본의 자완무시는 식전에 소량만 먹는 가벼운 느낌이랄까요. 같은 달걀찜이만 전혀 다른 분위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다음은 고전 메뉴지만 최근에 다시 각광을 받고 있는 달걀 샌드위치로 넘어가 볼까요. 어릴 때 생일상에 빠지지 않던 메뉴가 바로 이 달걀 샌드위치였습니다. 어머니는 좋은 날이면 항상 삶은 달걀을 으깨어 마요네즈와 잘게 다진 채소를 섞은 ‘달걀 사라다’를 만드셨는데요. 입 안에 한 숟가락 크게 넣으면 마음까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이 ‘달걀 사라다’를 싫어하는 어린이는 없었을 겁니다. 동그란 모닝빵을 반을 갈라 그 안에 달걀 사라다를 듬뿍 채워 넣은 것이 한국식 대표 달걀 샌드위치였습니다.


그에 반해 일본식 달걀 샌드위치인 ‘타마코 산도’는 두툼한 달걀지단이 들어갑니다. 하얀 식빵 사이에 심플하게 달걀지단과 소스만을 넣어 달걀의 씹는 맛을 극대화 시킨 샌드위치인데요. 잘 튀긴 돈까스에 소스를 발라 하얀 식빵 사이에 넣은 ‘가츠 산도’와 세트로 먹곤 했죠. 하지만 최근에는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일본식 달걀 샌드위치가 유행입니다. 다른 재료 없이 달걀을 무스처럼 만든 이 샌드위치는 맛이 전체적으로 달콤하고 부드러워 어쩐지 디저트를 먹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한국 편의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죠.


같은 식재료를 사용해 똑같은 메뉴를 만들어도 이처럼 색깔이 달리 나오는 요리들을 보고 있자니, 작은 달걀이 품을 수 있는 요리의 스펙트럼이 참으로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비슷한 듯 다른 달걀 요리가 있는 반면에 나라별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달걀 요리도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요리는 한국에서 사랑받는 브런치 메뉴 중 하나인 ‘에그 인 헬(Egg in hell)’입니다. 마치 시뻘건 용암으로 뒤덮인 지옥을 연상케 하여 붙여진 이름인 ‘에그 인 헬’은 지중해 및 중동 국가에서 즐겨 먹는 요리입니다. ‘샥수카’라고 불리기도 하죠. 커다란 팬 안에 빨간 토마토소스를 넉넉하게 깔아준 뒤 계란 몇 알을 띄엄띄엄 올리면 그야말로 강렬한 비주얼의 ‘에그 인 헬’이 완성됩니다. 담백한 종류의 빵을 소스에 찍어 먹으면 든든한 식사로 제격입니다.



다음 달걀 요리는 맥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영국 대표 음식 ‘스카치 에그’입니다. 반숙 계란 위에 도톰하게 고기를 감싼 후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낸 요리인데요. 갓 튀겨 나온 뜨끈뜨끈한 스카치 에그를 매콤한 소스에 찍어 먹거나 맥주와 함께 먹으면 어떤 때는 치킨보다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먹다 보면 두세 개는 손쉽게 해치울 수 있지만, 스카치 에그 한 개당 칼로리가 꽤 높기 때문에 적당한 절제력을 필요로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한국에서 웰빙 바람이 불면서 더욱 사랑받게 된 중국 요리 ‘토마토 달걀 볶음’입니다. 말 그대로 토마토와 달걀을 넣고 볶는 간단한 요리이지만, 달걀 스크럼블이 토마토의 새콤달콤한 육즙을 흠뻑 머금으면서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맛을 내지요. 게다가 달걀과 토마토는 영양적으로도 궁합이 잘 맞는 음식 조합입니다. 달걀의 부족한 비타민C와 비타민K를 토마토가 보완해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토마토의 리코펜 성분은 지용성이기 때문에 달걀노른자와 만나면 체내 영양 흡수율이 더욱 높아집니다. 줄여서 ‘토달볶’이라고도 불리는 이 달걀 요리는 최근에 다이어터들 사이에서도 사랑받는 건강식 중 하나입니다.


앞서 소개한 요리들은 나라별로 독특한 개성을 한껏 뽐내는 요리들이지만 누구나 따라 하기 쉬운 레시피들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가정에서도 손쉽게 먹을 수 있도록 맛의 문턱을 낮춰준 것은 달걀의 쉬운 조리 특성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냉장고에 별 다른 재료 없이 달걀 서너 알만 있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루의 컨디션을 좌지우지 하는 요소로 주저 없이 아침 식사를 꼽습니다. 아침 식사는 에너지 공급, 활발한 두뇌 활동, 안정적인 혈당 유지를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피곤한 아침에 단 몇 분이라도 더 자는 것을 선택하고 싶은 바쁜 현대인에게 꼬박꼬박 아침 식사를 챙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럴 때 저는 아침식사로서 달걀을 추천합니다.     


달걀은 균형 잡힌 풍부한 영양소, 든든한 포만감, 쉬운 조리법까지 아침 식사 메뉴로서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달걀 요리인 계란프라이는 단 5분이면 만들 수 있으며, 여기에 따끈한 밥과 간장, 참기름을 곁들이면 간장계란밥이 뚝딱 완성됩니다. 이 조차도 어렵다면 전날 밤 미리 삶은 계란을 준비하여 두세 개 먹고 가는 것만으로도 한결 힘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집을 나서는 길에 간단한 달걀 샌드위치를 사 먹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됩니다. ‘에그 슬럿’은 달걀이 주인공이 되는 경쾌한 샌드위치 맛집입니다. 영양이 풍부한 한 끼 식사를 즐길 수 있을 뿐 더러 샌드위치는 간편식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뒤바꿀 만큼 마치 뛰어난 맛을 자랑합니다. 마치 요리에 가까운 이 달걀 샌드위치를 저는 아침뿐만 아니라 점심, 저녁 식사로도 종종 즐겨 먹는데요. 어쩐지 뭘 해도 피곤하고 의욕이 없는 날, 달걀 샌드위치는 든든한 포만감과 함께 힘차게 하루를 살아볼 의욕을 선물해주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먹으며, 그 누구와도 친한 음식이 바로 ‘달걀’인 것 같습니다. 부화의 상징인 달걀은 신체에 필요한 양질의 영양소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추억까지 함께 품고 있죠. 참으로 작은 달걀 한 알 이지만 하루를 바꿀 수 있고, 그 하루가 차곡차곡 쌓여 인생이란 큰 세상으로 연결되니 이처럼 커다란 힘을 지닌 식재료가 또 있을까요? 오늘도 달걀이 품고 있는 위대한 힘을 기대하며, 달걀 요리로 하루를 시작해 봅니다.     









* 이 글은 SPC매거진 4월호에 기고한 칼럼으로, 전문은 아래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spcmagazine.com/작은-한-알로-하루를-바꾸는-커다란-힘_happy4-22040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