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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매거진/10월] 호호 불어먹는 호빵의 계절

                                                                               

 새하얀 눈, 설레는 크리스마스 등 겨울이 좋은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겨울이 기다려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겨울 대표 간식’ 때문이 아닐까요. 추울 때 더욱 맛있어지는 여러 음식 중에서 가장 먼저 하얀 눈사람을 닮은 ‘호빵’이 떠오릅니다. 큰 호불호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호빵은 마음속까지 따듯하게 만들어 주는 정다운 음식이지요. 오늘은 동그란 호빵이 품고 있는 긴 역사 속을 한 번 들여다 볼까요.                                              

보들보들한 촉감과 따듯한 온기를 품고 있는 호빵은 겨울이면 꼭 생각나는 국민 간식입니다. 눈사람을 닮은 호빵을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잡으면 어느새 꽁꽁 언 마음까지 사르르 풀어지곤 했지요. 뜨거워서 ‘호호’ 불게 된다는 호빵을 누군가는 ‘찐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호빵과 찐빵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엄밀히 말하면 과거 분식집에서 판매하던 찐빵을 삼립식품에서 제품화한 것이 바로 ‘호빵’입니다. 한 마디로 특정 브랜드명이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경우이지요. 


이 통통하고 귀여운 호빵의 나이가 어느덧 50살이 되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동안 한국의 대표적인 장수 제품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요. 호빵은 1971년, 몇 년간의 연구 끝에 세상 밖으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지금은 대표적인 국민 간식이지만 출시 당시에는 ‘고급 빵’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빵 한 개 가격인 5원보다 4배나 더 비싼 20원에 판매되었지요. 다소 높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호빵 공장 앞에는 소매상들이 장사진을 이뤘고, 호빵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가게마다 ‘찜통’이 구비되었습니다. 이 찜통은 소비자들이 직접 호빵을 쪄야하는 번거로움을 줄여주었는데요. 가정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도록 호빵을 대중화 시킨 일등 공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온 가족이 맛있어서 ‘호호’ 웃으며 호빵을 먹을 수 있는 ‘호빵 전성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호빵이 출시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그 크기와 무게에는 조금의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맛만은 무궁무진한 변화의 과정을 거쳐 오고 있는데요. 삼립심품에서는 매년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맛의 호빵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시즌마다 나오는 새로운 호빵을 보고 있노라면 그 당시의 외식 트렌드나 화두가 되는 맛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떡볶이로는 부족했는지 호빵까지 넘어온 매콤하고 부드러운 ‘로제 호빵’, 그 맛에 대한 호불호로 인하여 뜨거운 관심을 받는 ‘민트초코 호빵’, 부산의 명물인 씨앗호떡에서 모티브를 얻은 ‘꿀씨앗 호빵’ 등등. 동그랗고 보드라운 호빵 안에 어떤 개성 넘치는 맛이 숨어 있을지 매 시즌마다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번 해에 출시된 맛이 다음 해에 또다시 나올지는 모를 일입니다. 친숙한 호빵에 ‘희소성’이라는 프레임이 새롭게 더해진 셈이죠. 이렇게 과거 브랜드를 최신 트렌드에 녹여낸 ‘레트로’ 문화에 기성세대는 물론 mz세대까지 호빵을 향해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은 호빵 하나가 세대를 막론하고 남녀노소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으니, 이렇게 장수하는 제품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한 사람이 오면 그 사람의 일생이 같이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한 시간이 녹아있는 장수 제품 역시 단순히 음식 하나를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먹고 자란 유년 시절과 추억이 동시에 오는 것 같습니다. 호빵처럼 오랜 시간을 쌓아온 장수제품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소비자 입장에서 장수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은 리크스가 적다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소비자로부터 사랑받아 온 장수 제품은 이미 아는 맛, 검증된 맛을 보증합니다. 따라서 안전한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장수 제품은 그 자체로서 메리트가 있는 셈입니다. 어떤 음식을 먹을지, 어떤 맛을 고를지 결정을 내릴 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대부분 작고 사소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것들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지요. 이 때문에 장수 제품에 녹아든 추억과 익숙함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선택기준이 됩니다. 추운 겨울날 보드랍고 맛있는 호빵 하나면 속까지 든든해진다는 기억이 자꾸만 호빵에 손이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존의 친숙한 맛뿐만 아니라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신제품까지 출시되면서 호빵은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멈추어 있지 않고 계속 진화하는 제품이야말로 소비자와 함께 울고 웃으며 그 옆자리를 함께하는 진정한 장수 제품이 아닐까요.   


앞에서 소개한 무궁무진한 맛의 스펙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의 판매 1위는 ‘단팥 호빵’이라고 합니다. 이를 보면 사람들은 맛뿐만 아니라 호빵에 담긴 따듯한 감성을 맛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요. 사회에서 체면을 지켜야 하는 평소와 달리 뜨거운 호빵을 양껏 호호 불어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달콤한 단팥이 입 안에 진하게 퍼지면 한때나마 어른으로서 지켜야하는 무거운 책임을 내려놓고 마음 편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는 하지요. 한 손에는 피아노 학원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500원을 꼭 쥔 채로 단팥 호빵과 야채 호빵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고민이었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무엇을 먹어도 허기지고 고단한 날이 있습니다. 차가운 겨울 날씨에 손과 마음까지 시리다면 호빵 하나를 먹어보는 건 어떨까요. 따듯하고 보드라운 촉감, 배속까지 든든해지는 포만감, 빙그레 미소를 짓게 하는 정다운 맛까지. 호빵 하나에 축적된 오랜 시간이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위로해줄 겁니다.               







*본 글은 SPC매거진에 정기 연재중인 10월 칼럼으로,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spcmagazine.com/호호-불어먹는-호빵의-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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