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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촬영/sbs모닝와이드] 바다의 보물 '전복'

11월 23일 방송일자
SBS 모닝와이드 3부 '바다의 보물 전복' 편에
전문가 인터뷰로 출연하였습니다.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

                                               



- episode 

인터뷰 촬영은 약 1시간 가량 진행되었으나

막상 방송에는 편집이 굉장히 많이 되더라구요^^;


미리 받은 인터뷰지 질문에 대해 준비했던 답변과

실제로 촬영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간략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조선왕조실록> 

”아들 문종이 전복을 직접 썰어드리자 세종이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Q. 세종이 눈물을 흘린 이유?

A. 전복 껍데기는 ‘눈을 밝게 해주는 딱딱한 물질’ 이라는 뜻의 ‘석결명’이라고 하는데요. 아버지인 세종이 당뇨와 눈병으로 힘들었을 때, 직접 손질을 해준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아들의 효심에 감동을 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Q. 전복죽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요?

전복 말려서 유통하는 것이 일반적. 제주도 해녀들이 잡은 전복의 내장은 말릴 수 없어 버렸던 것이 아까워서 죽에 넣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먹어보니 해녀들이 물질을 하면서 손실된 체력 보충에도 좋고, 산후 조리에도 도움이 되는 것을 안거죠. 아마 이 때부터 민간에서도 전복이 기력을 회복하는 보양식 식재료로 자리 잡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한 전복이 구하기 어려운 음식이었던 만큼 집에 들어오면 어른들 몫이었는데요. 전복이 식감이 강하잖아요. 치아가 약한 어르신들이 부드럽게 먹기 좋은 음식이 ‘죽’이었을 겁니다. 한국의 전통 음식인 죽에 영양이 풍부한 전복이 들어가니 환자나 어르신들에게 더없이 좋은 회복식이 아니었을까요.     


Q. 왜 전복죽은 환자들을 위한 보양식일까?

예전부터 그랬지만 전복의 가격대를 보면 지금도 상당히 고급 음식으로 여겨지고 있죠. 전복죽을 먹으면 제대로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듭니다. 여기에 기력 회복을 위한 풍부한 단백질과 영양학적 특성. 또 호불호 없는 전복의 맛.  전복이란 식재료가 주는 보양식의 이미지가 적젏게 합쳐져 있죠. 지금도 환자들을 위해 죽을 고를 때면 사람들이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1등 메뉴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전복을 죽으로 즐기는 한국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Q. 중국에서 전복을 말려서 먹은 이유는?

중국은 내륙지방이라, 전복의 수급이 어려웠습니다.  특히 내장이 금방 상하기 때문에 말려서 조달했지요. 

한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시대에 말려서 유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말릴 수 없어 버렸던 내장이 아까워 죽에 넣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전복죽의 시초라고 보기도 합니다. 


Q. 전복을 말려서 먹으면 그 효능은?

한국은 전복을 보양식의 주재료로 삼는 반면, 중국과 미식의 영역에서 전복을 다룹니다. 특히 전복을 말리면 그 감칠맛이 2배, 3배 더 응축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해산물은 햇볕에 마르는 과정에서 단백질 구조가 변화해 화학조미료와 같은 원리의 감칠맛이 생겨납니다. 한마디로 천연의 조미료 역할을 하는거지요.  물론 생전복도 귀하게 여겼지만 이러한 이유로 중국에서는 말린 전복을 특히 더 귀하게 여기곤 합니다. 


Q. 전복은 언제부터 보양식으로 잡리 잡았나요?

사실 보양식이라는 건 우수한 영양학적 특성 + 귀한 식재료라는 인식이 더해져야 가능합니다. 전복이 고급 식재료로 자리 잡기까지의 역사를 한 번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이 전복을 언제부터 먹기 시작한 것인가 에 대해서 역사를 거슬러 가면     


*선사시대 : 그 당시 패총에서 전복껍데기가 출토될 만큼 전복의 역사는 오래되었음.     

*삼국시대 : 전복을 먹거리로 즐겼는지는 자세한 기록은 나와 있지 않음. 다만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전복의 진주를 전통 보석으로 사용했다는 것은 알 수 있음.     

* 고려 시대 : 전복이 먹거리로 대중화 된 것은 고려시대부터. 재미있는 점은 이 당시만 해도 전복은 서민들도 즐겨먹는 식품이었다는 점. 당시에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의 기록을 살펴보면 서민이 많이 먹는 해산물에 미꾸라지, 새우, 게 외에도 전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부산물인 전복껍데기를 이용한 나전칠기 공예가 성행했음. 

*조선시대 : 전복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점차 귀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리셨죵) 전복은 임금님에게 진상되는 귀한 해산물.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 진상품 가운데 하나로 가장 귀한 대접을 받았음. 그 당시 간행된 기록을 보면 멀리 있는 제주도의 특산품 중 말, 감귤과 함께 전복이 임금께 진상하는 공물 중 하나였음.(중국 진나라 진시황이 불로장생에 좋다고 하여 널리 구한 것 중에 전복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 이 당시의 전복은 주로 해녀들이 바다에서 채취하였고, 특히 제주도에서 나는 전복이 가장 우수한 등급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렇게 전복이 귀한 음식 인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탐관오리나 관리들이 전복 갈취 행위가 굉장히 심각해졌다고 합니다. 

* <제주풍토기> 기록 : 해녀들이 갖은 고생을 하면서 전복을 따지만, 탐관오리의 등쌀에 다 뜯기고 굶주림에 허덕인다.     


이런 사회적인 측면으로 인해 전복은 구하기도 굉장히 어려운 음식이었지만, 구하더라도 임금이나 관리들에게 납부해야만 하는 귀한 음식으로 인식되었습니다.    


+ 민간 에피소드: 

대부분은 공물로 납부되었지만, 귀하게 집안에 들어오면 주로 어르신들 몫이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에 한 유학자가 자신의 아버지가 병이 위중할 때 전복을 먹고 싶어 했는데, 결국 맛보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유학자가 이것이 너무 한이 되어 그 후로 평생 동안 전복을 입에 대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만큼 전복이 효도의 상징으로 여겨질만큼 귀한 음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 전복 : 일반 사가에서 어쩌다 전복을 구하면 집안의 어른인 노인들의 차지가 되었음. 부드럽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노인들의 보양식을 만드는 이야기와 조리법이 각종 문헌에 기록되어 있음. 어르신들이 먹고 기력을 회복 -> 보양식의 이미지 강화.      


* 최근 : 전복은 주로 바다 속 깊은 곳에 서식하기 때문에 이를 채취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움. 조선시대는 물론 가두리 양식에도 성공한 1990년대 이전까지도 전복을 구하기 쉽지 않았음. 전복은 매우 귀한 식재료로 여겨짐.      


식재료는 먹기 어려울수록 더 귀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 + 최근에는 전복 양식이 자리잡으면서 공급이 많아졌고, 가격이 하락하여 예전보다 구하기 쉬워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복이 귀한 보양식 음식으로 여겨지는 것은 과거부터 연결되어 온 이런 식문화의 역사가 우리 생각 속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  

   

그렇기에 전복은 물론 우수한 영양학적 특성도 갖고 있지만이런 희소성으로 인해 더욱 귀한 보양식 식재료로 여겨지지 않았나 싶습니다한국에서 전복이 보양식으로 자리 잡은 데는 사회 문화적인 측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이는 식문화에 영향을 많이 끼친 것을 알 수 있음.  

   

전복은 문화적인 차원에서 한국의 보양식에 포함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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