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식탁/2월] 고단한 삶을 버텨내는 국밥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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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금고 월간 매거진의 <인문학 식탁> 코너에
칼럼을 정기 연재하고 있습니다.
음식 속에 문학을 녹여내어 맛 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하고 깊은 의미까지 담고자 합니다.

2 월호 음식 주제는 '국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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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식탁. 2월>


고단한 삶을 버텨내는

‘국밥의 힘’


한국 영화를 보다 보면 종종 국밥 한 그릇씩을 앞에 놓고 먹는 장면이 하나의 클리셰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대체로 국밥에 대한 그들의 마음은 진심이다. 미식가처럼 국밥을 한 두 숟가락 천천히 먹고 내려놓는 장면은 찾기 어렵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무언가에 홀린 듯 숟가락질을 쉬지 않고 열심히 먹는다. 대미는 역시 무겁고 투박한 국밥 그릇을 양손으로 움켜잡고 꿀꺽 꿀꺽 국물을 들이키는 장면이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나까지 속이 후련해지면서 슬그머니 배고픔이 고개를 든다. 국밥의 민족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영화를 보며 공감한 적이 있지 않을까.


한 영화에서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등장했다. 패닉 상태의 그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허겁지겁 국밥부터 먹으며 속을 채우는 것이었다. 이를 보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래, 저 상황에서 우아하게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아 먹거나 여러 가지 반찬들이 나오는 한정식을 먹는 장면은 영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메뉴를 고민할 필요도 없이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주문 개수만 외치면 되는 명확함, 주문과 동시에 빠르게 나오는 스피드, 귀찮은 과정이나 별도의 도구 없이 숟가락만으로 퍼먹을 수 있는 단순함, 거친 속을 뜨끈하게 데워주는 진한 국물과 쌀이 선사하는 탄수화물의 즉각적인 에너지. 이것이 국밥의 본질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단순하고, 빠르고, 강렬한 무언가가 국밥 한 그릇에 아주 진하게 뒤엉켜 있다.



풍속화를 수놓던 생생한 주막의 풍경

우리 민족은 조선 후기부터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 장터를 떠돌던 보부상들이 주막에서 국밥과 술로 굶주린 배를 채웠다. 바로 이 때부터 국밥이 하나의 외식 상품으로 자리 잡아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풍속화를 살펴보면 주막의 노상에 앉아 국밥을 먹는 보부상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생계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봇짐을 이고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던 보부상들은 따끈한 국밥을 먹으며 시름과 허기를 달랬다. 그들은 양반만큼의 시간적 여유도, 물질적 풍요로움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빠르고 즉각적인 힘을 채워주는 국밥만큼 그들에게 딱 맞는 음식이 또 있었을까.


사실 국밥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에는 주모의 애환도 담겨 있다. 초창기에는 주막의 손님들에게 국과 밥이 따로 제공됐다. 갓 지은 따듯한 밥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차가워진 밥에 대해 손님들의 항의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뜨끈한 국물에 밥을 담았다 빼는 과정을 반복하여 밥의 온도를 높이는 ‘토렴’이라는 기술이 탄생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지금의 따듯한 국밥을 먹을 수 있어 좋지만, 그 당시 거친 보부상들의 항의에 끙끙 속앓이를 하던 주모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국밥 안에는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맛이 서려있다.



돌고 돌아도 결국은 ‘국밥으로의 회귀’

최근에 종영된 드라마에서 재벌집 막내아들이 국밥집 첫째아들로 돌아온 결말에 대해 많은 시청자들이 허망해했다. 재벌집과 국밥집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존재하는 걸까. 드라마 전개상 여러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왜 국밥집으로 돌아간 엔딩은 만족스러운 엔딩이 될 수 없던 걸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자면 아마도 국밥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치열하고 고단한 삶이 서려있는 국밥의 맛. 우리는 누구보다도 이 맛을 잘 알기에 드라마가 주는 판타지에서라도 잠시나마 이를 벗어나며 쾌감을 느꼈던 것은 아닐지. 하지만 누가 삶이 마냥 쉽고 행복하기만 하다 했던가. 우리는 결국 국밥을 먹는 일상으로 돌아간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다시 현실로 돌아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갈 뿐이다.


나는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온갖 미래를 알지는 못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 수 있다. 아무리 화려하고 좋은 산해진미를 먹더라도 결국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날에는 마치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국밥을 향해 달려갈 거란 나의 미래.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한국인이라면 피가 당기는 무언가가 저 뜨끈한 국밥 안에 단단히 숨어있다.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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