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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식탁] 진한 국물 속에 우러나는 정, 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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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금고 월간 매거진의 <인문학 식탁> 코너에
칼럼을 정기 연재하고 있습니다.

음식 속에 문학을 녹여내어 맛 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하고 깊은 의미까지 담고자 합니다.

7월호 음식 주제는 '삼계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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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식탁>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진한 국물 속에 우러나는 끈끈한 정 ‘삼계탕’


다큐멘터리에서 총 세 번의 삼계탕 끓이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장모님이 부엌에서 삼계탕을 끓여 집에 초대한 일본인 예비 사위와 딸에게 대접한다. 다음은 삼계탕이란 음식에 감명 받은 사위가 장모님에게 삼계탕 끓이는 법을 직접 전수 받으며 함께 만든다. 마지막은 사위가 홀로 삼계탕을 끓여 장모님과 아내에게 정성스럽게 대접한다. 한국의 음식 삼계탕이 일본인의 손에 의해 끓여지며, 삼계탕에 담긴 의미는 매 번 달라진다.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양영희 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에 나오는 장면이다. 재일조선인의 딸인 양감독은 그녀의 가족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남한 독재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활동가로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세 아들을 평양으로 보냈는데, 그만 첫 아들을 잃고 만다. 녹록치 않은 인생을 견뎌내듯 살아왔지만 양감독은 이런 부모님의 인생에 의문을 던진다. 그들의 삶의 방식에 동조할 수 없는 양감독과 나이 든 어머니와의 관계는 그야말로 대면대면 하기 짝이 없다. 이 건조하고 위태로운 관계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양감독의 예비 신랑이다. 조총련의 간부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살아생전 그녀에게 일본인, 미국인 사위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아 왔다. 하지만 그녀가 데려온 예비 신랑이 일본인이었던 것이다. 이에 양감독의 어머니는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부엌에 들어가 조용히 삼계탕을 끓여 정성스럽게 대접한다. 오랜 시간 푹 고아낸 삼계탕의 국물이 마음이 경계를 허물어버린 걸까. 일본인 예비 신랑은 처음 먹는 삼계탕의 뼈까지 빨아 먹으며 이 한국 음식에 푹 빠져버린다. 그리고는 마치 특별한 문화를 전수 받는 후계자처럼 양감독의 어머니께 삼계탕을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된다. 유독 국가 간의 경계가 선명했던 이 집안에서 한국의 전통 음식인 삼계탕이 일본인의 손에 의해 전수된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이름인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수프는 바로 삼계탕을 의미한다.


양영희 감독은 '사상은 달라도 밥은 같이 먹는다, 그게 우리 가족 안의 통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비록 서로의 생각이 다를지라도 함께 밥을 먹으며 살아간다. 그것을 ‘식구(食口)’라고 부른다. 삼계탕은 커다란 냄비에 닭을 넣고 끓여서 함께 나눠 먹는 음식이다. 오랜 시간 끓이며 우러난 삼계탕의 진한 국물 속에서 서로 다른 사상은 녹아 없어진다. 결국 뜨끈한 국물 속에 남아 우리가 먹게 되는 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상이 아니라, 그저 함께 밥을 먹으며 살아가는 가족의 끈끈한 정이 아닐런지. 내 자신 외에는 모두가 타인이라는 전제 하에 가족도 엄밀히 따지면 타인으로 구성된 집단일 뿐이다. 그리고 오히려 아주 사소하고 미묘한 계기로 이 타인과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히고 섥힐 수 있다. 그러나 뒤엉킨 관계의 실타래 속에서도 우선 숟가락을 들고 함께 밥을 나눠 먹을 수는 있다. 그러면서 조금씩이나마 서로를 어루만져볼 수 있다. 그것이 가족이라는 집단이 지닌 미묘한 힘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수프인 삼계탕이 바로 그 매개체가 되어준다.


삼계탕은 예로부터 귀한 음식으로 여겨졌으며, 여름철 사랑받는 대표 보양식 중 하나이다. 무더운 이 계절에는 이열치열이란 말을 온 몸으로 느끼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는다. 삼계탕 안에는 맛과 영양을 뛰어 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귀한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사실 만으로우리는 동질감과 애정을 느낀다. 혹시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과의 관계 속에 놓여있다면 보양식의 계절인 지금 삼계탕을 함께 나눠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서로 다른 사상은 내려 잠시 내려놓은 채, 진한 국물이 선사하는 따듯한 마음만을 건네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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