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섹션에
<이주현의 맛있는 음식 인문학>이란 타이틀로
매달 칼럼을 연재합니다.
음식 속에 담긴 인문학적 이야기를
맛있는 요리와 함께 가볍게 풀어내고자 합니다.
14번째 칼럼의 주제는 '바지락'입니다.
즐겁게 읽어 주세요 :)
날이 따듯해지는 2월부터 4월까지 바지락이 제철이다. 바지락은 쉴 새 없이 갯벌의 흙을 들이고 뱉으며 자신을 키운다.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행위지만, 그 안에서 진하고 깊은 맛이 생긴다. 바지락을 비롯한 조개류에는 타우린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이 성분은 자양강장제의 원료로 피로 회복 효과가 탁월할 뿐만 아니라, 요리의 감칠맛을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흔히 우리가 ‘입에 착 붙는 맛’이라고 표현하는 그 맛이다. 속이 영근 바지락을 잘 해감하여 매운 고추와 파만 살짝 넣어 맑은 탕으로 끓여내면 속이 다 풀어지는 깊은 맛이 난다. 별 다른 재료 없이도 바지락만 한 주먹만 있으면 요리의 맛에 깊이가 더해지니, 그야말로 이 시기에 누릴 수 있는 천연조미료인 셈이다.
과거의 우리 조상들 역시 조개류를 탕으로 즐겨 먹었다. ‘음식디미방’의 기록을 살펴보면 조개를 껍질째 맹물에 삶는데, 이 때 국물까지 함께 사용한다고 적혀있다. 이 조개탕의 이름을 ‘와각탕(蝸角湯)’이라 불렀다. 이 외에도 회, 구이, 전골, 찜, 찌개 등의 다양한 조리법이 나오지만 대체로 가열한 요리법이 주를 이룬다.
여러 요리 중에서도 제철을 맞은 바지락을 넣고 끓인 죽은 보약이 따로 없다. 먼저 바지락은 물에 삶아 건져내고 육수는 따로 보관한다. 냄비에 잘게 다진 당근, 애호박, 표고버섯, 쌀을 넣고 볶다가 바지락 육수를 넣고 눌러 붙지 않게 잘 섞어준다. 이 때 표고버섯 불린 물을 함께 넣으면 맛이 더 깊어진다. 쌀이 퍼지면 바지락 살을 넣고 소금 또는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고소한 김가루나 통깨를 뿌리면 입맛을 잃어버렸을 때도 부드럽게 술술 넘어가는 영양죽이 완성된다. 더 나아가 냉이와 같은 봄나물을 마지막 순서에 추가하면 향긋한 맛이 일품이다.
지금은 죽이 환자를 위한 최고의 영양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 죽은 과거 곡물이 부족하던 시절에 밥 대신 먹던 구황식품이었다. 재료를 적게 넣어도 양이 불어나니 많은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는데 이만큼 기특한 음식도 없었다. 이후 조선시대부터 죽은 보편적인 일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거리엔 죽을 파는 상인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했는데, 이덕무가 지은 ‘청장관전서’에 “서울의 시녀들이 죽 파는 소리가 개 부르는 듯 하다”라는 기록이 나와 있다. 죽이 돈을 지불하고 사먹는 음식으로 신분상승을 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백성들은 아침밥 대신에 죽을 먹곤 했다. ‘임원십육지’의 기록에 따르면 “매일 아침에 죽 한 사발을 먹으면 위장에 좋다.”라는 대목을 나온다. 우리도 바지락이 제철을 맞은 이 시기에 부드러운 영양죽으로 아침을 건강하게 깨워보는 건 어떨까.
한국일보 사이트에서 칼럼 전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3.30 발행)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3291004000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