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물 빵을 처음 먹었던 순간을 떠올려 봅니다. 대개는 “맛있어서”라기보다 “몸에 좋다니까”라는 이유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거칠고 퍽퍽한 식감 탓에 씹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느 순간엔 목이 메어 물을 찾게 되곤 했지요. 그래서 한동안 통곡물 빵은 ’건강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선택’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빵이 흰 빵과 대비되는 ’더 나은 답안’으로 등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통곡물 빵은 샌드위치나 브런치 접시 위에서 올리브오일과 채소, 치즈와 함께 조화를 이루며 등장했습니다. 흰 빵을 대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식사의 성격에 따라 어울리는 빵을 고르는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정제 기술이 만든 대비, 시대의 선택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변화는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원래 통곡물 빵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대접을 받았던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곡물 정제 기술이 발달하기 전, 빵은 지금처럼 하얗고 부드러울 수 없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식탁에 오르던 빵은 어두운 호밀빛을 띠었고, 질감 또한 거칠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친 빵은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통곡물 빵’과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당시의 빵은 귀리나 보리, 메밀을 의도적으로 섞은 혼합 곡물빵이라기보다, 제분 기술의 한계로 밀을 충분히 곱게 갈지 못해 만들어진 빵에 가까웠습니다. 곡물의 껍질과 배아를 완전히 분리하지 못한 채 제분되다 보니 식감은 투박했고 밀도도 높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빵은 한 조각만으로도 오랫동안 포만감을 주었고, 사람들의 일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에너지원 역할을 했습니다. 즐거움을 위한 음식이라기보다 삶을 이어가기 위한 기본 식량에 가까웠던 셈입니다.
변화는 제분 기술의 발전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곡물을 더 곱고 하얗게 빻을 수 있게 되자, 빵의 질감과 맛은 물론 식탁의 분위기까지 달라졌습니다. 하얀 밀가루 빵은 부드러움과 균일함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상징했고, 이는 곧 당시 사람들이 기술 진보를 통해 누릴 수 있었던 ’새로운 선택’이었습니다.
이 시기 통곡물 빵이 식탁에서 밀려난 이유는 그것이 열등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기준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부드러운 빵과 거친 빵은 우열의 관계라기보다, 당시 사회와 기술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자리를 차지한 결과였습니다.
기술의 진보가 만든 또 다른 선택지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통곡물 빵이 지닌 의미는 또 한 번 방향을 틉니다. 음식에 대한 영양학적 연구가 활발해지고 그 결과가 축적되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곡물을 소비하는 방식 역시 변화했습니다. 밀에 한정되었던 선택지는 귀리, 보리, 현미, 메밀 등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고, 오늘날 통곡물 빵은 이러한 곡물의 껍질과 배아를 포함해 만든 빵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곡물의 겉부분과 배아에 식이섬유와 비타민 B군, 비타민 E와 같은 영양 성분이 풍부하다는 점도 함께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정제 기술을 통해 더 부드러운 식감과 안정적인 품질을 얻었습니다. 동시에 곡물의 구성 요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지도 늘어났습니다. 정제 기술은 분명한 진보였지만, 그 진보는 하나의 정답이라기보다 다양한 선택을 가능하게 한 출발점에 가까웠습니다.
통곡물 빵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습니다. 과거에 어쩔 수 없이 먹던 빵이 이제는 기호에 따라 식탁에 올리는 빵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통곡물 빵은 ’생존의 음식’에서 ’선택의 음식’으로 다시 한 번 이동하게 됩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통곡물 빵이 ’몸에 좋다’는 정보가 알려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정제 기술과 발효 기술, 유통 환경이 함께 발전하면서 빵은 더 이상 하나의 기준으로만 평가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드럽고 균일한 흰 빵은 여전히 중요한 선택지로 남아 있고, 동시에 통곡물 빵은 곡물의 풍미와 질감을 즐기는 또 다른 선택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제 빵은 ’어떤 것이 더 낫다’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식사에 무엇이 어울리는가’를 고민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통곡물 빵은 메뉴와 조리법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가집니다. 때로는 흰 빵보다 더 높은 가격과 더 많은 설명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이는 우월함의 증명이 아니라 선택의 맥락이 달라졌음을 보여줍니다.
선택이 많아진 시대의 빵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통곡물 빵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흥미롭게도 가장 오래된 빵이 오히려 가장 새로운 선택이 되었다는 역설적인 상징을 지닙니다. 덜 정제된 것이 가장 현대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 과거에는 서민의 빵이 이제는 식단을 관리하고 취향을 드러내는 선택으로 읽힙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통곡물 빵은 건강을 고려한 선택인 동시에, 맛의 조합과 식사의 완성도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통곡물 빵을 고른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닙니다. 한 끼를 어떻게 채우고 싶은지, 자신의 생활 리듬과 취향을 드러내는 선택에 가깝습니다. 빠르게 소화되는 식사를 택할 것인지, 혹은 천천히 포만감을 느끼는 식사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흰 빵이 필요 없는 것도 아니고 통곡물 빵이 반드시 더 나은 선택인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빵의 종류 자체가 아니라, 그 선택이 어떤 생활 리듬과 식사의 목적에서 나왔는지입니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왜 그 빵을 골랐는지. 통곡물 빵을 둘러싼 변화는 우리에게 그 질문을 남깁니다.
음식은 해답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식탁에 앉아 있는지를 말없이 드러낼 뿐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선택을 넓혀준 지금, 그 선택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오늘날 빵이 가진 가장 큰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이주현 푸드 칼럼니스트
따뜻한 진심을 담은 요리 한 그릇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영양사 출신의 푸드 칼럼니스트입니다. 음식에 깃든 삶과 문화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트렌드’라는 연결고리로 엮어, 흥미롭고 깊이 있는 읽을거리를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