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여름에 가장 사랑하는 과일은 무엇일까. 보통 여름 과일하면 수박을 떠올리기 쉽지만, 샛노란 참외 역시 이맘때쯤 사랑받는 대표적인 계절 과일이다. 무더운 여름 밤, 온 가족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참외를 깎아 먹었던 장면은 누구나 추억의 한 페이지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아직도 개나리보다 더 노랗던 참외를 깎는 엄마의 능숙한 칼질을 잊지 못한다. 노란색의 단단한 껍질이 칼질 몇 번에 슥슥 나가떨어지면 새하얀 과육이 드러났다. 그 과육을 길게 4등분 하면 가느다란 하얀색 실과 수십 개의 참외 씨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삭거리는 달큰한 과육을 한 입 배어 물면 입 안 전체에 청량한 맛이 퍼져 나갔다. 바로 여름의 맛이었다.
국민 아이스크림의 인기 비결은 참외?!
한국인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아이스크림이 있다. 바로 ‘메로나’다. 이 메론 맛의 아이스크림은 사실 남의 맛으로 인기를 누린 장수식품이다. 메로나의 주원료는 멜론이 아니라 뜬금없게도 참외이기 때문이다. 빙그레 신제품 팀은 1991년 메로나 개발 당시, 대중들이 멜론 맛에 익숙지 않았기에 참외 맛으로 대신했다. 멜론의 높은 단가도 물론 그 이유 중 하나였지만, 국민 과일인 참외의 친숙한 맛이 바로 메로나의 인기 비결이 된 셈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종의 영업 비밀이지만, 이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과 배신감을 동시에 느꼈다는 설이 있다.
한 지붕 두 가족… 참외와 멜론
메로나 아이스크림이 아니더라도 사실 참외와 멜론은 아주 긴밀한 관계에 놓여있다. 일명 ‘한 지붕 두 가족’이기 때문이다. 본래 참외와 멜론은 식물학적으로는 같은 작물이다. 이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분화되면서 각각 유럽, 동양으로 전파되었다. 부드러운 맛을 선호하는 서양인들에 의해 유럽에 자리 잡은 것이 멜론, 아삭한 맛을 좋아했던 우리 선조들에 의해 동아시아계에 정착한 것이 참외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참외는 동양의 멜론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영명으로는 ‘Oriental melom’ 이라고 불린다. 식물은 진화과정 중 자연선택에 의해 특정한 종(種)이 살아남지만, 농작물은 사람의 취향에 의해 선택되어 널리 재배된다는 점이 참으로 재미있다.
작은 한 알에 꽉 찬 참외 영양 효능
여름 과일들이 대부분 그렇듯 참외 역시 몸의 열을 내려주는 효과가 있다. 예로부터 한방에서는 참외를 이뇨작용 및 갈증을 없애주는 약재로 유용하게 사용해왔다. 수분 함량이 90%인 참외는 여름철 탈수를 막아주며, 칼륨이 풍부하여 이뇨작용을 촉진시킨다. 다만, 칼륨 섭취를 자제해야 하는 콩팥환자의 경우는 반드시 섭취에 주의가 필요하다.
임산부를 포함한 여성들은 참외와 친하게 지낼수록 좋다. 자궁경부암 예방과 기형아 출산을 예방하는 엽산과 철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참외를 자르면 과육 안쪽의 흐물흐물한 부분을 태좌라고 하는데, 여기에 엽산이 많이 들어있다. 이외에도 알칼리성 식품인 참외에는 항암 작용을 하는 쿠쿨비타신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체중 조절을 하는 다이어터에게도 참외는 반가운 식품이다. 100g당 30kcal의 저칼로리 과일이지만 든든하게 포만감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타민C가 풍부하여 피부 미용에도 효과적인 뷰티 식품이다.
아삭한 식감, 달콤한 맛…싱그러운 참외 요리
참외는 음료로 마시면 특유의 싱그러운 향과 달콤한 맛을 잘 느낄 수 있다. 가장 쉽고 만만한 메뉴는 믹서기를 이용한 ‘과일 스무디’다. 여름 대표 채소인 토마토와 함께 갈면 항산화 효과가 탁월한 다이어트 스무디가 손쉽게 완성된다.
참외는 담금주로도 즐기기 좋다. 씨앗을 제거한 참외, 설탕, 담금술을 넣고 한 달간 숙성시킨 뒤에 참외 과육을 건져내고 먹으면 된다. 단, 참외는 몸을 차갑게 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마시지 않도록 주의한다.
‘참외 피클’과 ‘참외 깍두기’는 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하여 별미로 즐기기 좋다. 참외 피클은 피클 절임물을 끓인 다음에 참외, 파프리카, 풋고추 등을 넣어 실온에서 6~7시간 정도 절여준다. 알록달록한 채소와 과일의 색감에 기분까지 경쾌해진다. 양식, 한식, 중식, 일식 어디에 곁들여도 잘 어울려 입맛을 개운하게 해준다.
아삭하고 단단한 식감이 무와 비슷한 참외는 하얀 색의 과육만 발라내어 깍두기로 무쳐도 잘 어울린다. 굵은 소금에 절인 과육에다가 고춧가루, 다진 마늘, 멸치 액젓, 매실청을 넉넉하게 넣고 가볍게 버무리면 금세 깍두기가 완성된다. 찬 물에 밥을 말아서 같이 먹어도, 따끈한 밥에 참기를 한 바퀴 휙 둘러 비벼 먹어도 좋다. 무더위에 잃은 입맛을 돌아오게 하는 여름철 별미 메뉴로 손색없다.
‘지중해풍 참외 샐러드’는 달콤 아삭한 참외, 짭잘한 올리브, 새콤한 토마토, 고소한 올리브유, 칼칼한 후추가 묘한 조합을 이룬다. 가벼운 에피타이저로도 술안주로도 잘 어울리는 이색 참외 샐러드. 여기에 생치즈를 갈아서 뿌려 먹어도 잘 어울리며, 맛이 약하다고 느껴지면 오리엔탈 드레싱을 소량 뿌려 먹어도 괜찮다.
<필요한 재료>
참외, 방울 토마토, 올리브, 샐러드용 채소, 올리브유, 소금, 후추
<만드는 과정>
1. 참외는 얇게 썰고, 방울토마토는 반으로 가른다.
2. 그릇에 나머지 재료를 담고 올리브유를 뿌린 뒤에 소금, 후추를 기호껏 뿌린다.
입으로 먹기 전에 눈으로 한 번 더 즐거운 ‘닭가슴살 참외 샐러드’를 소개한다. 닭가슴살 대신에 게맛살, 새우 등을 넣어도 잘 어울린다. 참외는 노란색 껍질에는 간을 보호하는 베타카로틴 영양소가 풍부하므로, 되도록 깨끗하게 세척하여 껍질채 먹는 것을 추천한다.
<필요한 재료>
참외, 닭가슴살, 샐러드용 채소, 과일(선택)
오리엔탈 드레싱 : 간장 1큰술, 올리브유 1.5큰술, 올리고당 1큰술, 레몬즙 1큰술, 통깨 약간
<만드는 과정>
1.참외는 깨끗하게 세척하여 되도록 껍질채 얇게 원형으로 썰어서 준비한다.
2.삶은 닭가슴살을 결대로 얇게 찢어준다.
3.분량의 오리엔탈 드레싱 재료를 섞은 뒤에 삶은 닭가슴살, 샐러드용 채소와 함께 가볍게 섞어준다. (이 때, 참외를 깍둑썰기 하여 넣어도 좋다.)
4. 그릇에 1의 참외를 깔고 그 위에 샐러드를 올려 완성한다.
필자는 여름에 수박보단 참외 한 알이 더 좋다. 혼자서는 다 먹지도 못할 거대한 크기와 만만치 않은 가격에 수박을 구입하는 손길에 망설임이 묻어난다. 하지만 혼자서 두 세알 정도는 거뜬히 먹어치울 수 있는 참외라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검은 봉지 안에 와글와글 들어 있는 샛노란 참외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 먹을 생각에 발걸음이 경쾌해진다. 올 여름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과일 참외와 함께 시원하고 맛있게 계절을 나보는 건 어떨지.
*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전문가 필진으로 기고한 6월 컬럼으로,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리, 사진, 글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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