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 느낄 것 같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결혼.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신랑이라 그런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중에 얼마 전부터 눈에 들어온 영화가 있었다. 마블 영화에서도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대단하다고 느꼈던 [HER] 영화의 목소리 연기를 했었던 스칼렛 요한슨의 주연 영화 [결혼 이야기]였다.
다소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저 제가 느꼈던 포인트들을 같이 나누고자 함입니다.
처음 이 영화의 포스터만 봤을 땐, 그냥 갈등이 있었으나, 무사히 해결해내는 따뜻하고 평범한 결혼 이야기를 다루는구나 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다루는 서사가 생각했던 부분과 많이 달랐다.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다루고 있었다.
적어도 영화 시작 후 약 5분간은 여느 따뜻한 가족 이야기의 시작과 비슷하였다. 부부 각자의 나레이션이 이어지며, 서로의 장점을 설명하고, 우린 그렇게 따뜻한 가족이다 라고 보여주는구나 하는 순간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따뜻한 가족), 주인공 부부가 한 상담가 앞에서 우물쭈물하며, 서로의 장점을 적은 편지를 읽을지를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혼을 앞둔 부부의 현실적 모습)
그렇게 감독은 그런 따뜻한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바로 반전 및 대비 효과로 딱 알려준다. '그렇게 결혼은 마냥 따뜻하고 좋아 보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그냥 이혼은 현실적인 거야 라고 하는 것보다 더 강하게 현실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대비 효과는 이 영화를 직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대비를 통해 각 부부의 모습과 캐릭터를 좀 더 극명하게 보여준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이를 시작으로 이 영화는 왜 그들이 이혼을 고려하게 되었고, 어떻게 그들이 이혼 과정을 치르는 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극 초반 부분에 상담가가 그 편지를 읽으라고 하는 순간이 또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상담가는 부부에게 누구라도 좋으니 서로의 장점을 읽으라고 권유한다. 그렇지만 와이프인 '니콜'은 그 읽기를 거부한다. 왜냐면, 아직 나의 상처, 나의 좌절감을 조금도 치유하는 노력 없이 (무엇이 이유였는지 보다), 서로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서로를 칭찬하면서 다시 생각해보자는 방식이 되었기에, 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왜냐면 남편인 '찰리'의 장점이 결국 니콜은 초라하게 만들고, 결국 무너지고, 그것이 이혼의 이유였던 것인데, 그 이유를 읊으라고 하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상담가의 간극 줄이기는 뒤에 나오는 와이프 '니콜'의 변호사 '노라'와 많은 대비를 보여준다.
상담가(혹은 변호사)는 의뢰인인 부부와의 간극부터 줄이려고 하였는가?.
처음 나왔던 남자 상담가는 먼저 부부와의 거리감을 줄이지 않고, 그저 부부의 간극을 줄이는 것에 포인트를 두었던 것이, 반감을 일으켜 역효과를 나타냈다. 그에 반해 여자 변호사 노라의 첫 등장 장면은 나에게 상당한 놀라움을 주었다. 감독 혹은 작가가 만들어낸 장면이겠지만, 그 배우가 만들어낸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와이프와 변호사가 만나는 첫 장면에서 변호사인 노라는 부드럽게 다가가며, "아이 행사가 있어, 내 꼴이 엉망이에요"라고 한다. 그런데 노라가 입은 옷은 화려하며 연분홍색의 외투와, 새빨갛고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던 상태였다. (당당하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보여주는 듯한). 하지만, 처음 내뱉은 말은 "내 꼴이 엉망이에요"라고 하는 것은 1) 나는 더 좋은 옷을 입을 수 있는데 이 정도예요라는 어쩌면 기분 나쁜 말로 들릴 수도 있고, 2) 좋은 방향으로 바라보면 '나 원래 이런 옷 입고 다니지 않아요' 라며 스스로는 낮춰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혼을 앞두고 있는 와이프 '니콜'은 그저 회색 셔츠를 입고 있어서 칙칙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혼한 변호사인 노라의 당당하고 화려한 모습과, 이혼을 앞두고 자기 자신을 잃은 칙칙한 와이프 니콜의 대비는 여기서도 보인다. 더불어, 저 말을 들은 니콜이 자기 꼴을 슬쩍 보는 모습 또한 주인공에 녹아든 스칼렛 요한슨의 진미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잠깐 찾아보았다. 도대체 먼저 "내 꼴이 엉망이에요" 번역이 아니라 실제 영어 대사는 무었을까?
"sorry, i look so schleppy."
schleppy? 영어를 잘하진 않으나, 처음 보는 단어였다. 안타깝게도.. 다음 어학사전에서는 상기 단어 뜻이 나오지 않았으며, 네이버 어학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나왔다.
schleppy [명사]
1. 꾀죄죄한(slovenly), 초라한(frumpy), 허술한.
2. 서투른, 어설픈(awkward, clumsy), 둔한(dull).
이렇게 뜻을 보았는데도, 선뜻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다음 변호사 '노라'의 대사가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 말부터 할게요, 당신은 훌륭한 배우예요"
와이프인 "니콜"이 잃어버린 것이 자존심이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상대방을 높게 치켜세우고, 그 뒤로 그가 공연했던 것을 직접 봤음을, 관심이 많아서 저 말들이 진짜임을 뒷받침하였다. 그러면서 빨갛고 높은 구두를 벗어던지고, 의뢰인과의 눈높이를 맞추면서 하는 대사
"If you should choose to hire me, I will work tirelessly for you"
"날 고용한다면, 당신일에 전념할 거예요"
라고 말을 하며 화려한 겉옷마저 벗어두고, 니콜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의뢰인과의 거리부터 좁히기 위해 권위를 벗어던지는 모습에 니콜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장면은 조금 영화의 뒷얘기이나, 와이프인 니콜이 남편인 찰리에게 그토록 원하던 모습이었다. 이기적이고 권위적인 찰리에게 이런 변호사인 '노라'와 같은 행동이 있었으면 이혼으로 가지 않았을까? 이 장면이 영화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 장면이라고 느꼈다.
이 장면이 너무 기억에 남아, 영화 정보를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변호사 '노라'역을 맡은 "로라 던"이 이 영화를 통해서
2020년
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여우조연상)
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여우조연상)
40회 런던 비평가 협회상(여우조연상)
26회 미국 배우 조합상(영화부문 여우조연상)
25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여우조연상)
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여우조연상)
2019년
84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여우조연상)
무려 7개의 상을 쓸어 담았다. 간극을 좁히기 위한 행동을 너무 부드럽게, 내가 니콜이라도 무너졌을 거라 생각할 정도로 멋지게 해내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사실 아내인 니콜과 남편인 찰리는 변호사를 끼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하기를 원했으나, 아내 니콜의 심경변화로 변호사'노라'가 개입하게 되면서 이 국면은 갈등으로 치닫는다. 상담가가 아닌 변호사인 노라는 이혼소송을 승리로 이기 위해, 니콜의 고향인 LA에서 소송을 걸고 진행하며, 남편인 찰리가 변호사를 쉽게 구하기 어렵게끔 손을 쓴다. 아직까지도, 원만하게 해결을 원하고, 자신의 극단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찰리는 뒤늦게 이혼 소송에 뛰어들게 되는데, 변호사인 노라의 어쩌면 얍삽(?)하다고 생각했던 행돌들에 슬슬 분노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니콜의 변호사 선임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찰리의 외도였다. 사실 외도는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으나, 찰리의 메일을 해킹하여 얻게 된 정보였다. 그만큼 갈등이 점점 깊어지며, 서로의 사생활을 까발려지는 상황에 이르었다.
외도는 사실 부부 사이에 씻을 수 없는 큰 문제이다.
논외로 우리나라에서 혼인을 하면, 법률상으로, 제826조에 따라 부부간의 의무를 가진다.
제826조(부부간의 의무)
①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한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로 일시적으로 동거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서로 인용하여야 한다.
② 부부의 동거 장소는 부부의 협의에 따라 정한다. 그러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청구에 의하여 가정법원이 이를 정한다. <개정 1990. 1. 13.>
더불어 민법에 명문으로 된 규정은 없으나, 동거, 협조, 부양 의무를 넘어, 성적 성실의무 (정조의 의무)가 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저 2번 부부의 동거 장소에 대해서도 첨예하게 갈등한다. 친정이며, 할리우가 있는 LA로 돌아가기 원했던 아내 니콜, 터전이 뉴욕인 만큼 극단에 몰입하기 위해 뉴욕을 벗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남편 찰리.
그런데 이 이야기가 여기까지만 본다면, 찰리를 마냥 나쁜 놈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아들 헨리를 위해 움직이고 가르치고 같이 놀아주는 모습을 보이고, 장모와 처형과 매우 각별한 사이를 지내며, 명절 혹은 휴가 때마다 친정댁에서 머무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럼 왜 외도를 하였는가? 이혼 소송으로 인해 서로의 갈등의 고조에 다다르면서 나온 이야기들에서 알 수 있었다.
자존감이 무너져 사랑을 더 느끼기 어려웠던 니콜이, 작년부터 부부관계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문제였을까? 과연 부부관계 거부는 이혼사유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또 해답을 찾고자 하였는데,
위에 나왔던 의무에 기거하여 재판상 이혼 원인을 민법 840조로 규정되었다고 한다.
민법 제840조 (재판상 이혼원인) 부부의 일방은 다음 각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개정 1990. 1. 13.>
1.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6.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부부관계에 대해 따로 명시된 것은 없기에 6번 문항에 기거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성교를 거부하거나,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때에는 부부관계 거부가 이혼사유가 된다는 판례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입증'하냐가 관건이다. 정말로 그러한 부부관계 결핍의 누구의 문제로 일으켰느냐,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였느냐를 이야기 위해서는 입증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참 어려운 일이기에, 서로의 사생활이 물고 뜯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혼 소송은 잔인하게,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만 가득 안겨줄 뿐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가득한 채 이 영화는 결국 이혼소송이 마무리되고, 아들인 헨리는 엄마인 니콜과 함께 LA에서 지내게 된다. 그제야 아들을 위해 찰리는 UCLA에서 일하기 위해 LA로 넘어오는데, 모든 게 일이 벌어진 뒤의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찰리는 아들을 보기 위해 니콜 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니콜이 적은 영화 첫 페이지의 편지를 보고, 후회와, 안타까움, 그리고 쓸쓸한 눈물을 보이게 된다.
내가 생각했던 뻔한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참으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해 주었다. 이혼은 누가 더 잘못이냐 싸우려는 게 아니었다. 그저 사랑하는 자식을 더 내가 키우고 싶은 부모의 욕심인데, 하필 부모가 2명이기에 싸우게 되는 것인데, 그것이 서로에게 상처만 가득 남겨주었다.
결혼은 현실이라고 한다. 그저 좋은 모습을 바라보는 연애와는 다르게, 생활 반경 전체를 공유하고, 싫던 좋건 떨어질 수 없는 것이 결혼이다. 그런 와중에 아이가 생기면 너는 엄마, 나는 아빠 이렇게 살아가게 되는데, 그러면서 생기는 문제점들이 가득할 것이다. 부모의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부부의 한 명이기도 하다. 부부는 사랑을 해서 만들어진 관계이다. 그러니 같이 사는 몇십 년 동안 끊임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또 유혹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평생을 함께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내 사람이니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유혹이 있어야, 그 마음이 변치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사 끊임없는 유혹이 가능하지 않을지라도, 그러한 노력이 결국 상대방의 마음을 계속 붙잡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힘듦이나 아픔을 이해하고 그렇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비로소 우리는 결혼한 부부이다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