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만큼 자란 아빠
두 번째 육아휴직 중이다. 2018년, 나는 나이 서른아홉의 아빠다. 이번 휴직은 첫째의 초등학교에 입학에 맞춰 시작됐다. 아침 8시 반까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준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은 요일별로 다르지만 오후 12시나 1시다. 그래서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나에게 서너 시간의 자유가 생긴다. 아이가 어린이집 다니기 전에 했던, 첫 번째 육아휴직 때는 없던 시간이다.
휴직하고 처음 한 달은 여유가 없었다. 아이 초등학교 생활에 나도 적응할 일들이 많았다. 집안 살림도 정리했다. 매일의 생활이라면 지나쳤을 집안의 묵은 살림을 꺼내고 버렸다. 냉장고의 괴생물체. 싱크대 구석에 숨어 있던 조리 도구. 세탁실, 장롱, 서랍장, 아이 방, 보일러실, 베란다... 모두 들어냈다.
화장실벽 타일과 베란다 창문까지. 냉장고 선반과 가전제품의 묵은 때까지. 집안 전체를 쓸고 닦았다. 20평의 작은 아파트였지만 맞벌이하며 오랫동안 손대지 못했던 퀴퀴한 생활의 흔적은 잘 떨어지지 않았다. 집을 다 정리하고 나니 매일의 살림 루틴만 간소하게 남았다. 오전 시간을 편하게 보낼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서른아홉에 맞이한 매일 서너 시간. 그 시간에 청소도 빨래도 요리도 해야 하지만, 그래도 오롯이 나 혼자만 존재하는 시간이 생겼다. 나 혼자만 존재하던 시간이 있었을까. 취업, 결혼, 육아, 친구, 직장동료, 회식, 술, 모임. 소란했던 20대, 30대를 지나왔다. 늘 누군가와 연결되고, 타인에게 시간을 함께하는 게 나의 시간이었다.
첫 번째 휴직 때도 그랬지만, 휴직 하고 출근하지 않아도 사무실에서 전화가 온다. “집에서 뭐해! 술 한 잔 하자!” “일 년 동안 못 보는데, 회식 한 번 더 해야지~” 끊기 어려운 유혹들. 하지만 육아휴직을 하고 저녁에 술 마시러 다닌다면 휴직한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어렵게 얻은 소중한 시간을 지금까지와 똑같은 흐름으로 흘려보내기 아까웠다. 그래서 첫 번째 휴직 때 전화번호를 바꿨다. 그리고 휴직 후 걸려오는 전화들에 몇 번 거절을 표했다. 결국 전화기도 조용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간에 살림을 하고 요리를 한다. 아이 학교생활을 챙겨주고, 같이 논다. 하지만 나 혼자 있는 시간도 생겼다. 산책 하고, 책을 읽고, 멍하니 창밖 거리를 바라본다. 아이 덕분에, 일도 멈추고 삶의 시끄러움도 끌 수 있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조용한 시간이 생기자,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삶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바라보게 됐다. 휴직을 하고 아이를 돌봤지만, 아이가 크는 만큼 아빠도 자랐다.
그 시간을 여기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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