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과 아빠
초등학교 1학년 등교시간은 아침 여덟시 반까지다. 그 시간, 학교 후문엔 아이를 내려주려는 차들이 골목을 따라 길게 선다. 차에서 아이가 내려 교문으로 들어가면, 그 차는 앞으로 빠져 큰 도로로 나간다. 그러면 다음 차가 딱 차 한대만큼 앞으로 이동해 아이를 내려준다. 그렇게 차례차례 아이들이 학교로 들어간다. 나는 운전석에, 아이는 운전석 뒤 카시트에 앉아 우리 순서를 기다린다.
딸이 고개를 옆으로 빼며 말한다.
“아빠, 근데 왜 염색 안 해?” / “아, 염색. 왜? 아빠 염색 했으면 좋겠어?”
“어 아빠 여기 흰머리 있어. 할아버지도 있는데.” / “응, 알았어. 실내화 가방 챙기고, 잘 다녀와~”
그리고 오후 1시. 1학년 하교시간 풍경은 이렇다. 수능시험장 모습과 비슷하다. 교문을 두고 반원으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 속에 엄마들, 학원 선생님들, 그리고 내가 있다. 시험 끝난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들처럼 초조하게 서있다.
각자 엄마를 찾아가는 아이들. 아직은 부모들도 아이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학교를 마치고 나오면, 수능 만점을 맞은 것처럼 대견해한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하교시간에 찾아오는 부모의 수도 조금씩 줄어든다. 아이가 스스로 집까지 걸어가기도 하고, 학원으로 바로 가기도 한다. 그런 시간이 지나며, 아이들은 서로의 엄마 아빠를 알게 된다.
“저기 누구 엄마다.” “저기 너네 아빠 왔다.”
내 염색 이슈는 여기서 시작된다. 친구들과 함께 교문 안에서 아빠를 기다릴 때. 딸은 아빠의 흰머리가 싫었던 모양이다. 어린이집 다닐 때 보면, 이제 막 말문이 트인 아기들이 “누구 엄마 예쁘다.”라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다행히 초등학교 1학년들은 면전에서 ‘너네 아빠 흰머리 있다.’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녀석들, 많이 컸다.
서른아홉이 되니 새치라 말하기도 그렇다. 흰머리는 양 옆에만 난 상태였다. 그래서 많이 티가 나지는 않지만, 출근 할 때도 종종 동료들이 염색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도 ‘뭐~ 염색할 필요 있나’ 하며 넘겨버렸다. 염색을 하게 되면 나이든 사람이 돼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딸의 몇 차례 요구에 결국 염색할 미용실을 알아봤다.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염색일 텐데. 나는 꽤 머뭇거렸다. 미용실에 장시간 앉아 뭔가를 한다는 것도 미리부터 창피하고 어색한 기분이었다.
미용실을 찾았다. 먼저 커트를 했다. 내 흰머리를 커버할 색상 선택은 선생님께 맡겼다. 조금 오래 두어도 흰머리가 잘 티 나지 않을 만한 것으로 선생님이 골라주셨다.
"저 대학생 때도 염색 안 해봤어요, 염색 태어나서 처음 하는 거예요." / "진짜요?"
"딸이 학교 가더니 하도 하라고 해서..." / "애들이 하라고 하면, 그렇죠..."
그래 애들이 하라고 하면 할 수 없지. 선생님도 1학년 아이를 둔 엄마였다. 우리의 대화는 방과 후 수업, 학원 보내는 일, 학부모 상담으로 이어졌다.
예상대로 염색약을 바르고 앉아 있는 내 모습은 꽤 바보 같았다. 차가운 염색약 때문에 점점 두통이 느껴졌다. 역시나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도 염색은 끝났고, 머리는 단정해졌다. 조금 젊어졌으려나?
8살 초등학교 1학년도 그렇지만,
39살 아빠도, 아직 세상에 처음인 게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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