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와 체크카드

편견

by 무진

첫째가 두 살 세 살이던, 첫 번째 휴직 때는 아이를 집에서 봤다. 어린이집엔 조금이라도 늦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최대한 여러 일을 한 번에 처리해야 했다.


집 앞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옆에 있는 농협에 갔다. VISA가 되는 체크카드가 새로 나왔다고 해서다. 어떤 카드든 해외에서 잘 된다고 하지만, 막상 외국에 가보면 VISA가 아니면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나는 신용카드를 아예 사용하지 않기에, 체크카드면서 VISA인 보기 드문 이 카드가 출시되자마자 얼른 발급받으러 갔다.


체크카드를 신청하러 왔다고 말하자, 은행직원은 신용불량자가 신용카드 발급해달라는 걸 본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확하게 ‘넌 안 될 것 같은데’ 라는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체크카드 신청하겠다는 말 밖에 안했는데, 사람을 앞에 두고 고개를 가로 젓다니.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완전히 당황했다. 하지만 난 카드를 만들고 싶고, 신분증 한 장이면 여기선 나의 많은 정보를 알게 된다.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기 싫어,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참았다. 게다가 유모차에 아기도 있으니까.


속으로, ‘내가 신용카드를 만들러 온 것도 아닌데’ 라고 생각 했다. 아니다. 남자가 대낮에 유모차를 끌고 와서 신용카드를 만들어 달라고 해도, 사람이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은행직원이 신분증을 달라고 해서 주었다. 뭔가 계속 불편한 표정인 채, 그는 내 개인정보를 조회하기 시작했다. 이 은행은 내 월급통장 거래은행이고, 직장과 계약금고 관계다. 그래서 내 개인정보를 중국만큼이나 많이 가지고 있다. 직장 내 근무부서, 직급, 사무실 내선번호 등등.


갑자기 은행직원의 표정과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휴직이 아닐 때도 별로 다르지 않지만, 휴직 중인 내 통장 잔액은 여전히 겸손한데도 말이다.


‘시청에서 근무하시나 봐요.’ / ‘네, 근데 지금은 휴직 중이라 근무는 안 해요.’

‘복직하면 이 부서로 다시 가시는 건가요?’ / ‘어느 부서로 복직하게 될지는 인사가 나야 알 수 있어요.’


내 정보를 조회하기 전이랑 계속 같은 표정과 말투였다면 나았을까. 끝까지 나에게 말 한마디 안 건넬 것 같은 태도였으면 차라리 좋았을까. ‘아, 직장 때문이었구나. 진짜 백수 되면 좆되겠구나’ 싶었다. 은행직원은 카드를 발급하는 내내 휴직생활, 휴직제도, 직장에서 휴직을 받아들이는 분위기 등 여러 가지를 물어왔다.


유모차를 밀고 집으로 오면서 ‘나 때문이었나.’ 싶었다. 혹시, 그 체크카드 발급에 나이제한이 있어서 그랬나? 그건 아니다. 내가 건넨 첫마디가 그 카드를 만들러왔고, 내 나이를 말한 것이었으니까. 내 행색이나 외모 때문이었나? 아니다. 휴직했기 때문에 오히려 추리해보이지 않으려 깔끔하게 입고 다녔다. 뭐야 그럼, 진짜 마지막으로... 아니다 내 얼굴, 그렇게 혐오감을 주는 얼굴 아니다. 진짜다. 믿으세요. 여러분... 여러분?


많은 여자 분들이 그렇듯,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던 그 은행 직원분도 나에게 아빠가·남자가 대단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휴직을 하고 나서,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이상한 사람도 되었다가 대단한 사람도 된다.


아무튼, 카드는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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