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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May 29. 2023

간헐적 은퇴

월요일. 아침. 출근하지 않는다. 도서관에 근무하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출근한다. 월요일에 쉰다. 월요일에 무엇을 해야 할까. 월요일엔 모든 사람이 어디론가 떠난다. 혼자 남은 조용한 요일은 뭘 하면 좋을까. 혼자 영화를 봤다. 넓은 극장에 혼자다. 혼자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차츰 집에 있게 된다. 혼자 영화 보고,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일은 집에서 더 충만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나는 내내 일하지 않고 살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일이 없거나 은퇴하면 그 적막함을 못 견딜 거라고들 한다. 나는 최소한의 돈만 있으면 가능할 것 같다. 작년에 10개월간 직장에서 마련해 준 장기 교육을 받으며, 나는 교육과 별도로 내 실험도 했다. 일없는 상황을 얼마나 잘 견딜 것인가? 나는 일하는 상황만큼이나 일없는 상황을 잘 즐겼다. 견디지 않고 즐겼다. 기획실과 비서실에서 매일 이른 아침 출근해서 자정 가까이 퇴근하는 생활을 무던히 지나왔지만, 아무 일 없는 상황은 더 잘 지낼 수 있다는 확신이 왔다. 


오롯이 혼자 지내는 하루는 이렇게 채운다. 명상, 요가, 걷기, 등산, 커피, 요리, 책 읽기, 글쓰기, 음악 듣기, 영화 보기. 가끔 여행이나 전시회 관람이 추가된다. 이런 것엔 돈도 별로 필요 없었다. 물론 별로라는 건 상대적 기준이겠지만. 나는 책은 99.5% 도서관에서 빌리기에 돈이 들지 않고, 커피도 좋아하는 원두를 사서 내려 마신다. 옷은 한 번 사면 10년 정도는 입는다. 담배는 피워본 적이 없고, 밖에서 술을 마시는 경우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뿐이다. 식비가 매일의 생활에 가장 크지만, 1일 1식도 종종 즐겁게 하는 내겐 그것도 별문제가 아니다. 


저렇게 해보기 전에 돈 벌기 위해 일하지 않고, 저런식으로 느긋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매일 그렇게 살면 지루해서 못 견딘다고들 말했다. 실제로 은퇴한 퇴직자들이 우울하게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가 쉽게 들렸다. 나는 이 실험을 10개월간 했다. 매일 아무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생활의 기조를 유지했다. 실험의 유효성을 확보할 만큼은 유지했다. 내겐 너무 잘 맞는다는 걸 확인했다. 월든 이후로 이런 실험을 한 사람이 나뿐인 것도 아니다. 


그렇게 장기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그런 생활을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교육 초기 코로나19로 2달간 줌을 통한 온라인 교육일 때도 나는 저런 생활을 유지했다. 하지만 교육원으로 모였을 때 우울증이 올 것 같다는 하소연을 한 사람도 많았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견디지 못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함은 많은 철학자와 강연자들. 또 수많은 다양한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굳이 다시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그래도 아무 이야기 하지 않으면 이상하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없으면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다. 즉, 자신의 삶 자체가 타인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극이 될 뿐이다. 


아무튼. 일하기 싫은 나는 이렇게 은퇴 시뮬레이션을 틈나는 대로 해본다. 그래서 이번 월요일엔 명상, 청소, 세차. 점심엔 더우니까 냉소바를 만들고 만두를 구웠다. 오후엔 장을 봤다. 부대찌개를 만들고 계란 후라이를 해서 저녁을 먹었다. 여름 냄새가 솔솔 나려 하니까 방울토마토 껍질을 까고 매실청과 로즈메리를 넣어 방울토마토 매실 절임을 만들었다. 초여름 같은 하루가 만족스러웠으므로 레몬 넣어 하이볼을 만들어 마셨다. 도서관에서 내 실험은 월요일마다 계속된다. 


자, 은퇴할 마음의 준비는 다 됐다. 로또만 되면 된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를 쓰신 분께 해보고 싶다. 책방 차리는 이야기인 줄 알고 집어 든 책이었는데, 마흔넷이거나 마흔둘인 내가 직장생활 만 15년차에 일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을 상담해주는 책이었다. 이런 신기한 일이.


#내가가진것을세상이원하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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