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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May 29. 2023

이미 죽은 우리들

Chat GPT. 내 업무엔 엑셀 기초 함수들만 써도 된다. 호기심에 GPT에 엑셀에서 사용할 코딩(VB Script)을 짜달라고 했다. 엔터를 치자마자 바로 코드가 완성된다. 친절하게 붙여넣는 방법까지도 알려준다. 오류가 생기면, ‘오류가 나는데’라고 하면 또 수정해 준다. 


구글 폼에서 구글 캘린더로 데이터를 넘길 방법을 알고 싶어 한 참 구글링을 했다. 도저히 안 돼서 GPT에 웹에서 찾은 코드를 복사해 넣었다. GPT는 이 코드는 어떤 코드라면서 궁금한 점을 해소해 준다. 이젠 정말 간단한 엑셀 함수마저 물어보게 된다. D2 셀 밑에 데이터가 있는 셀만 카운트하는 함수는? 전이라면 엑셀에 cou... 라고 치면서 엑셀에서 보여주는 추천함수를 생각했을 텐데, 그런 생각조차 귀찮아진다. 대학생 때 GPT가 있었다면 ASP와 DB 연동하며 발생하는 에러를 이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됐겠지. 약간의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이런 컴퓨터와 관련된 것만 있다면 신기하고 말 텐데, GPT에 기독교와 불교의 사후세계 인정에 관해 물어봤을 때 유창한 답변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시대에 글을 쓴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GPT 같은 AI 들이 이야기를 하는 시대에. 


의미 없는 일 같다. 얼마 전 『시와 산책』을 읽었다. 그래 글은 이런 사람들이 쓰는 건데. 우리는 나 너 할 것 없이 다 쓰고 있구나. 브런치에 올라 온 글들을 본다. 내 글도 마찬가지. 올리면 플랫폼을 타고 몇만 명이 읽지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글을 삼만 명이 읽어도, 내 글이 제대로 된 이야기가 아닌 걸 아는데. 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일 뿐. 


유발 하라리는 그간 SNS는 공포, 증오, 분노를 이용했지만, GPT 같은 AI는 사용자와 친밀감을 형성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어서 위험하다고 한다. 이어령 선생님은 럭셔리한 삶은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라고 하셨다. 똑같은 시간을 살아도 이야깃거리가 없는 사람은 산 게 아니라면서. 

가뜩이나 내 이야기가 없어 TV에서 나오는 남의 집 고치는 이야기, 남이 결혼하는 이야기, 남이 아이 키우는 이야기, 이젠 남이 연애하는 이야기로 삶을 채우며 살아가는 우리인데. 이젠 그 이야기마저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시대. 


내 삶에 제대로 된 내 이야기를 채우며 살아야지. 누구를 붙잡고 몇 시간쯤은 혼자 떠들 수 있을 만큼. AI가 이야기 마저 만들어 내는 이런 시대에 그런 이야기가 없다면? 할 이야기가 순자와 영철밖에 없다면? 살아 있어도 이미 죽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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