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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n 04. 2023

삶은 작은 선물

선물. 깨달은 이들은 말하죠. 삶이 선물이라고요. 저는 삶이 작은 선물로 채워질 때 삶이 선물이라 느껴요. 큰 선물은 별로고 작은 선물이 좋지요. 그런 작은 선물을 잡으면 뜬구름같이 손을 빠져만 나가던 삶이 몽글몽글 만져지지요. 카카오톡의 작은 선물들도 좋지요. 기술적으로 세상에서 제일 못나 보이는 카카오톡이 유일하게 선녀처럼 보일 때지요.


회사 아주 먼 부서의 어느 형이 제가 알지 못하는 건축법을 제가 부탁 하지도 않았는데 온종일 찾아봐 주었어요. 예산에 맞는 설계업체 선정하는 방법을 나서서 알려주기까지 했죠. 너라서 도와준다면서요. 그날 퇴근 무렵 문자로 고맙다는 말과 아이들과 함께 드시라고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카카오톡 선물하기 코드로 보내드렸어요. 이렇게 신속하게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으니 기술도 종종 세상을 환하게 하기도 하지요.


제가 기획한 아이들 코딩 프로그램을 진행한 강사님들껜 작은 쌀 마들렌을 드렸어요. 3일 자리 교육을 가는 팀원에겐 스타벅스 커피 카드를 보내주고요. 태국 여행을 간다는 직원에겐 삼단으로 접는 손수건 같은 수건을. 이렇게 제가 하는 선물들은 아주 작은 것들이에요. 오히려 축의금 같은 건 잘 하지 않아요. 대규모 조직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복도에서 지나치는 사람에게도 축의금을 하게 돼요. 나중에 복도에서 마주칠 때 민망하니까요. 저는 제가 받은 축의금은 이제 다 돌려줬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부터 스스로 안 주고 안 받기를 실천하고 있어요. 공무원들이 인사발령이 나면 의례적으로 하는 선물도 저는 안 해요. 그래서 저는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겨도 선물이 거의 오지 않지요. 참석하지 못하는 경조사 축의금과 의례적인 선물이 저에겐 아무런 마음이 담겨있지 않다고 느껴졌어요.


그런 큰 선물들에도 어쩌면 제가 이해 못 한 효용이 있겠지요. 세상은 다 알기엔 복잡하니까요. 다만 저는 그 사람을 솔솔 살펴봐야만 제대로 된 선물을 할 수 있는 작은 선물. 사람을 조금이라도 알아보겠다는 마음을 먹은 선물이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엔 결혼하는 직원에게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과 편지를 선물했어요. 그 친구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저에겐 따로 커피와 땅콩 선물을 주었어요. 제가 매일 원두를 집에서 갈아와 사무실에서 드립백으로 내리는 걸 봤던 거예요. 작은 선물엔 그런 메시지가 있어요. ‘당신의 삶과 취향을 존중합니다.’


하와이 커피 맛있네요!




지리산 종주와도 같아요.


지리산의 그 위대한 명성. 지리산을 가보지 않아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그 웅장한 이름은 다 알지요. 그렇지만 지리산은 설악산 같은 특별한 풍경을 보여주진 않지요. 길게 길게만 이어지는 산길. 익숙해졌다 싶으면 죽을 것처럼 힘들고 모든 것을 당장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어지는 길이 또 나오고요.


그냥 걷는 것뿐, 다른 의미는 찾을 수 없지요. 말했듯 풍경이 주는 엄청난 행복도 없지요. 그저 그냥 삶의 시간이 흘러가듯 길을 흘러갈 뿐입니다.


대피소에 도착하면 소박한 식사를 하고, 몰래 싸 온 위스키를 한잔 들이키고, 이른 잠을 청하며 ‘내일 이 길을 또 가야 하네’하며 절망스러운 마음이 됩니다. 하지만 이내 ‘그래 이런 산행도 그럭저럭 괜찮네’라는 마음이 들지요.


이 지루함과 지독한 평범함을 함께 견디고 걸을 사람을 찾는 일. 산행하면서 계속 이야기하거나 계속 옆에 붙어 걷지 않지요. 한참 붙어서 이야기하며 걷다가 또 한참 앞뒤로 서서 혼자 조용히 걷기도 하지요.


섣불리 이 일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고, 누구나 그저 그렇게 걸어갔던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저 지금 한 발, 한 걸음이 땅에 닿는 느낌을 느끼는 일.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바람을 온 몸을 다해 만져보려 애쓰는 일. 그 계절에 보내오는 공기 냄새의 차이를 알아차려 보려 노력하는 일. 그저 그런 일이지요. 그런 일을 무심하게 옆에서 같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바로 그 정도의 의미.


하지만 생의 매 순간을 오롯이 느끼려는 것 이외에 삶에 다른 무엇이 있을까요. 그 일을 함께할 동반자를 찾은 걸 축하해요.


OO이라면 역시나 아주 잘 찾았을 거라 믿어요.


신혼 집에 두면 어울릴 책을 한 권 골랐어요. 신혼 집에 행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사진: UnsplashJoanna Kosin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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