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겨울, 처음으로 혼자 일본 간사이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마지막 날 코스는 아톰의 작가인 데츠카 오사무 기념관이었다. 그곳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가가 어릴 때부터 그린 낙서를 모아둔 전시관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많이 사서 쟁여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2년 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옷이든 물건이든 정리해버리는 편이다. 그러나 내가 유일하게 끌어안고 있는 것이 있었다. 초등 시절부터 그렸던 낙서장, 다이어리, 편지 등 추억의 물건들이다.
'와, 나도 유명해질 때를 대비해서 어릴 적 자료를 남겨놔야겠어!'
꿈과 포부가 가득했던 대학 초년생의 다짐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의 박물관을 세울 위인이 되진 못할 것을 자각했다. 그럼에도 열정 가득한 시절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추억의 물건을 신혼집에까지 끌고 왔다.
나는 언젠가 마음의 준비가 되면 꼭 내 손으로 물건들을 정리하리라 다짐했다. 느닷없는 죽음을 앞두고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겨진 가족들이 보물스럽지 않은 나의 보물들을 정리할 걸 생각하니 왠지 민망한 기분이었다.
'으아, 진작에 정리할걸..!'
퇴원 후, 날을 잡고 쓰레기봉투를 꺼내 들었다. 손수 만든 생일 카드, 학생증, 주고받은 쪽지들, 명찰, 수험표, 티켓 등 첫 일본 여행의 부산물들, 만화 동호회에서 만든 회지, 필름 카메라용 롤필름, 아껴 두느라 그대로 남은 스티커 등 그림을 포함한 다양한 추억들을 비워냈다.
아쉬운 마음에 정리 전 한 컷.
물건마다 꼬리를 물고 나를 과거로 이끌었다. 회상 끝에 달린 감사, 열정, 즐거움을 거두어 마음에 담고, 물건은 쓰레기봉지에 담았다. 시간이 제법 걸렸다. 1차로 반을 비우고 이사를 계기로 한번 더 비웠다. 여전히 1/3 정도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