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다시 일할 수 있을까
내 엄마는 출산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고 자녀들을 기르다가 내가 11살이 되던 해에 다시 취직을 하셨다. 그 영향인지 나도 아들이 4살 되던 해에 퇴사를 했지만, 몇 년 뒤엔 다시 일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것이 있으니 엄마가 출산을 한 나이는 20대였고 나는 열 살이 더 많은 30대였다는 것이다.
40대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건만 불과 몇 년 사이에 몸 이곳저곳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목부터 어깨, 허리, 고관절, 무릎, 발목까지 약속이라도 한 듯 아파왔다. 특히 엄지 손가락이 아파서 그림은커녕 설거지조차 버거워지자 무력감마저 들었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처럼 밥만 축내는 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맘 같아선 어딘가로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지만 내가 아니면 밥이고 빨래고 할 사람이 없었다. 억지로 집안일을 하고 틈날 때마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작은 핸드폰 화면을 보니 피곤하고, 피곤하니까 눕고, 누워있으니 핸드폰 화면만 보고, 화면만 보니 또 피곤하고...
두 계절을 넘길 즈음 아들이 자연스럽게 침대에 누워 태블릿을 보는 것을 보았다. 뜨끔했다. 보나 마나 엄마인 나를 보고 배웠으리라. 계속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낼 순 없었다. '정신 차리자.. 침대에서 벗어나자!'
무조건 하루에 한 번은 집을 나가 걷기로 했다. 첫날, 근처 산책로에서 빠른 걸음으로 3 천보 정도 걸었다. 고작 30분이지만 답답한 실내 공기에 절여진 폐가 리프레쉬되는 기분이었다.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아직 삶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시간을 늘렸고 한 달쯤 지나자 5 천보까지 거뜬히 걸을 수 있었다. 서너 달 지나자 허리도 한결 편안해졌다. 동생의 조언을 듣고 뜨끈한 왁스물에 손을 담가보니 손가락 통증도 많이 사라졌다.
나빠지기만 할 것 같던 몸이 호전되자 바닥을 보였던 자신감도 조금씩 차올랐다. 회사까지는 어려워도 동네에서 아르바이트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길을 가다가 구인 종이를 보면 죽 집 주방이든 건물 내 병원청소든 뭐든 가리지 않고 기웃거렸다.
아들의 10살이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