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다닌 직장은 자율 복장이었다. 나는 발볼이 넓은 편이라 편한 운동화나 캔버스화를 신는 일이 잦았지만 중요한 행사가 있거나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을 땐 단연 구두를 선택하곤 했다. 3센티미터 더 높아진 눈높이와 구두의 경쾌한 또각 소리만큼 내적 에너지가 발산되는 기분이었달까.
퇴사 후, 육아를 하면서 운동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약해진 관절을 보호하기 위함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구두는 신발장의 장식품으로 밀려났다. 백화점에서 거금을 들여 구입한 뱀가죽 질감의 브랜드 구두부터 오래 서 있는 행사 때마다 유용하게 신었던 굽 낮은 검은 구두까지 구두 네 켤레가 나란히 과거의 커리어를 뽐냈다. 언젠가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왠지 모를 아쉬움 때문에 나중으로 미루곤 했다.
면접을 앞두고 먼지 쌓인 구두가 빛을 보는 날이 왔다. 먼저 재질이 비슷한 네이비 재킷과 블랙 바지를 매치해서 입고, 흰 블라우스 대신 블랙 니트를 입고 짧은 스카프를 둘렀다. 화룡정점이 될 블랙 구두를 신을 차례. 구두 위 먼지를 털고 가방에 담았다. 불편한 신발을 신은 채로 지하철을 오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다가 물집이라도 생기면 도착하기도 전에 지칠 것 같았다. 구두 대신 애정하는 운동화를 신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면접이라니!'
두 단체 모두 계약직이었지만 서류 탈락의 아픔을 먼저 경험한 덕분인지 면접 자리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과거 어디선가 스쳤던 익숙한 단체의 이름이 적힌 문 앞에 서자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대기실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면접 모드로 전환했다. 시간이 되어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면접실에 들어갔다. 세 분의 면접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소개부터 지원 동기 등등 이런저런 질문에 답변을 했다.
면접을 마친 후 다시 운동화로 갈아 신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몇 가지 답변은 좀 횡설수설한 것 같긴 한데 아주 아쉽진 않았다. 혹시 결과가 안 좋아도 다음 기회가 올 거라는 가능성을 발견했으니까. 구두도 다시 본래의 신발장 자리에 고이 올려놓았다. 당분간 구두들이 휴지통으로 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고맙다. 덕분에 무사히 해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