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창피하다
비영리 NGO 중에도 유명하고 모금 규모가 큰 단체의 공고가 올라왔다. 계획했던 것보다 좀 이르지만 경력을 믿고 과감하게 지원해 보기로 했다. 단체의 채용 양식과 지원하는 직무에 맞게 서류와 포트폴리오를 수정하고 첫 지원서를 제출했다.
며칠 동안 이메일에 N버튼이 뜰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리고 받게 된 탈락 소식.
'서류 전형 결과에 많이 아쉬우셨겠지만, 크게 상심하지 않으시기를 바라며..'
상심했다. 아주 많이. 떨어져고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내심 서류 정도는 붙을 줄 알았나 보다. 부풀었던 자신감이 급속도로 쪼그라들었다.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다음 날부터 해외여행을 간다고 준비 중이었다. 언제 같이 가자는 친구의 정다운 말에 취업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잘 다녀오라는 인사만 건넸다.
'부럽다.'
왈칵 눈물이 났다. 여전히 일과 양육을 병행하고 있는 워킹맘 동료들이 떠올랐다. 애초에 퇴사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자책했다. 지난여름 나를 짓누르던 우울이 성큼 코 앞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지난 시간을 부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눈물을 훔치고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빨래를 널고 청소를 했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빠른 걸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노라니 기분이 조금 환기됐다.
'회사에 있었으면 보지 못했을 아들의 귀요미 시절을 생각해 봐. 퇴사한 덕분에 시도할 수 있었던 엉뚱한 도전들도. 코로나 때는 또 어떻고.'
이제 시작이라며 나를 다독이는 한편, 정규직만 바라보던 눈을 한 껏 낮추었다. 규모가 작은 단체의 계약직이나 경력과 무관한 직무에도 원서를 넣기로 했다. 몸은 납작 엎드릴지언정 마음만은 뻔뻔함으로 돌돌 말았다.
'그래, 그들도 나를 검증할 시간이 필요할 테지. 부담 없이 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주겠어. 나도 이상한 곳이다 싶으면 계약 끝나고 그만두지 뭐.'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이후 원서를 더 제출한 뒤, 두 단체에서 면접 안내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