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배 아파.."
새벽 5시, 아들이 나지막한 신음 소리를 내며 안방으로 들어왔다. 덜 깬 눈을 억지로 떠보니 아들이 침대 한 켠에서 배를 잡고 구르기 시작했다. 동네 소아과가 열릴 때까지 기다릴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헐레벌떡 일어나 남편을 깨워 응급실로 향했다.
도착한 종합병원 응급실은 소아과가 없어서 진료는 할 수 있어도 소아약을 처방할 수 없다며 가까운 대학병원을 추천했다. 다음 대학병원에선 소아과 응급의가 없다며 어린이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초조해진 남편은 검색 좀 해보라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출장이 잡혀 있는 날이라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야 했다.
나는 피곤함과 걱정이 뒤섞인 머릿속을 정리하며 회사로 향했다. 출발하는 차 안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병원에서 뭐라고 할까 싶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서울을 벗어날 즈음 남편이 메시지를 보냈다.
"변비래. 장에 똥이 가득해"
'저런.. ㅎㅎ'
안쓰러우면서도 웃음이 절로 났다. 병원에서 X레이 검사 후, 변비로 인해 장이 일시적으로 꼬인 것이라며 약만 처방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출장에서 만난 아기도 병원에서 만났다. 생후 6개월 차인 미유는 목의 근육이 수축되는 신생아 사경이 발견되어 물리치료를 받고 있었다. 물리치료사는 아기의 오른쪽 목덜미가 붉게 물들 정도로 목 근육을 이완시켰다. 나는 약 30여 분간 작은 몸으로 치료를 견뎌내는 미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물리치료가 듣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미유는 수술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듯했다. 다행히 일찍 치료를 시작했기에 대운동을 시작할 때까지 치료를 지속하면 거의 재발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부분의 대상자들과 달리 6~8개월 정도만 치료비를 지원하면 문제가 해결되기에 근래에 본 사례자중 가장 희망적이리고 할 수 있었다.
미유의 엄마는 한국에 온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한국어 소통이 거의 불가능했다. 병원에서 해주는 설명도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통역을 부탁해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준비해 간 질문도 거의 남편이 대답했다. 미유 엄마는 아기가 건강해지고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빨리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안 그래도 타지에서 아프면 서러운데, 내 아이가 아프면 얼마나 더 속상하고 답답할까.'
서울로 복귀하면서 아침부터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들이 아주 어릴 때 열경련으로 한 달 사이에 앰뷸런스를 두 번이나 탔던 아찔한 기억이 떠올랐다. 한 번 더 경련이 일어나면 뇌 문제일 수 있다는 말에 몇 년 동안 아이가 열이 날 때마다 온 가족이 밤을 새 가며 체온을 재곤 했다. 초등학생이 되면서 감기조차 어쩌다 한 번 뿐이라 자연스레 아들의 건강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가 별 탈없이 자고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오랜만에 되새겼다.
집에 도착하자 일찌감치 학교를 조퇴하고 학원도 제끼고 놀던 아들이 나를 반겼다. 남편은 계획에 없던 아들의 조퇴로 종일 힘들었다며 푸념하고, 아들은 학원에 안 가서 숙제도 없다며 신나 했다.
'그래, 숙제가 중요하랴. 안 아픈 것이 최고지.'
남편에게 고생했다 말하고, 해프닝에 불과했던 하루에 안도하며 곯아떨어졌다. 어린 미유네 가족에게도 이번 치료가 잠시 지나가는 아무것도 아닌 날들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