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파도쳐 올 때 그저 지켜본다
오후 1시에 수술실로 이동한다는 연락을 받고 집사람은 휠체어에 몸을 싣고 수술실로 이동하였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늘어진 필름처럼 눈에서 꼬리를 물고 지나간다.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투영되어서 그런가 보다.
집사람보다 늦게 수술실에 들어간 분들도 수술 마치고 회복실로 또는 병실로 이동한다는 전광판을 보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저녁 6시쯤에 수술실에서 보호자를 찾는 방송이 나왔다. 안내한 방으로 가니 의사 선생님이 수술 경과를 알려주셨다. 수술은 잘 끝났고 마무리하고 나면 바로 중환자실로 옮길 거라 하셨다. 집사람이 받은 휘플 수술은 대수술이라 회복실이 아니라 중환자실로 옮긴다고 한다.
저녁 8시 정도에 중환자실에 가서 집사람을 봤다. 입술이 다 튼 채로 "아파, 아파"라고 힘없는 소리를 내는 집사람을 위해 내가 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두 손 꼭 잡아주는 것 외에는...
수술 다음날, 오전에 중환자실에서 미리 예약한 2인실 병실로 이동하였다. 아무래도 수술 후 통증이 심해 여러 사람이 있는 병실보다는 2인실이 여러모로 편해 보여서 신청했지만, 1인당 사용 면적은 6인실과 비슷했다. 거의 2시간마다 간호사 분들이 오셔서 혈압 체크하고, 체온 측정하고 하다 보니 나도 거의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수술 후 이틀째에는 많이 피곤했는지 나도 모르게 코를 심하게 골았나 보다.
새벽녘에 갑자기 무언가 얼굴로 철퍼덕 날아와서 놀래서 깨어보니 젖은 수건이 얼굴에 붙어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보니 집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내가 너무 코를 골아서 옆에 계신 환자분과 보호자분들이 힘들어하셔서 자기도 몸을 잘 움직일 수 없어 침대 난간에 있는 수건을 던진 거라 한다.
그때부터 난 밤이 무서워졌다. 반창고로 입을 붙여서 자기도 하고, 옆으로 돌아 누워 자면 코를 덜 골까 하고 밤새 옆으로 누워있다 보니 어깨도 아파오고 며칠 지나다 보니 진짜 1인실로 옮겨 편하게 자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다. 자다가 혹시 내가 코를 많이 골면 침대 난간에 걸어둔 옷걸이를 이용해서 나를 깨우는 방법도 써 보았으며, 집사람은 집사람대로 수술 통증으로 힘들어하고 난 나대로 밤잠을 설쳐가며 거의 일주일 이상을 힘들게 견뎌내었다.
집사람에게 달린 여러 개의 링거줄과 복부 염증을 확인하기 위한 조그마한 플라스틱 주머니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제거되고 수술받은 지 9일 만에 퇴원해도 좋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힘든 수술을 잘 견뎌내 준 집사람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런데 여기까지 고난 끝, 행복 시작이라 생각한 건 나만의 오해였나 보다.
무급휴가까지 합쳐서 3주 만에 회사에 출근하니 직장 상사가 나에게 배우자 간호하는데 힘들 텐데 집 가까운 센터로 내려가라 한다. 나와 집사람을 배려해 준다는 명목이지만, 실상은 자기 뜻대로 잘 따르지 않는 사람을 다른 곳에 발령 내겠다는 것이었기에 마음이 심란했다.
왜 힘든 일은 한꺼번에 파도쳐 오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