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인간관계에 대하여
이 글의 BGM으로는 방탄소년단의 <Whailien 52>를 권합니다.
But 늘 생각해
지금 새우잠 자더라도 꿈은 고래답게
다가올 큰 칭찬이 매일 춤을 추게 할 거야
나답게, yeah, I'm swimmin'
- Whailien 52 가사 중
최근 브런치북 공모전 참가를 위해, 지난 2년간 내가 쓴 프로덕트 관련 글들을 모두 읽어보았다. 취업 준비를 할 땐 UI, 개발 지식 등 하드스킬 관련 주제가 많았고, 확실히 취업 후엔 리더십, 시간관리, 커뮤니케이션 등 소프트스킬 주제가 많았다. 커뮤니케이션은 참 어렵다. 그리고 이 고민은 연차가 쌓일수록 더해질 것 같아 더 관심을 갖게 되는 듯 하다.
내가 맡은 일을 잘하고자 하는 마음은 당연한 것이고, 어떤 직무 어느 직급이든 "계속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커져갔다.
왜 자꾸 이런 마음이 들까 생각해봤는데, 내가 그런 동료들을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성격이 잘 맞아서 계속 같이 일하고픈 동료들도 있지만, 정말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점이 많아서 계속 같이 일하고픈 동료들도 있다. (물론 정반대도 많다..ㅎㅎ)
여하튼 결론은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중요하다. 이번 글에서는 계속 같이 일하고픈 동료에게서 배운 점과, 나도 그렇게 되기 위한 고민들을 담았다.
'주니어'라는 위치에서 프로덕트와 프로젝트를 리딩 하다 보면 여러 혼란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나는 서로 충돌되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겠을 때가 가장 큰 것 같다.
왜냐하면 양 입장의 의견이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스스로 업무나 일에 대한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일수록 더 많이, 더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때 심플하게 업무만 포함되어 있는 조언이라면, 전사의 방향과 우선순위에 맞는 적합한 조언을 참고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인지라 때론 감정이 섞인 피드백을 듣게 될 때가 있다.
"저 의사결정은 왜 저렇게 된 걸까?"와
"저 사람은 왜 저래?"는 다르다.
업무가 아닌 개인을 탓하는 조언은 걸러 듣기로, 나도 하지 않기로 매일 슬랙을 켜기 전 다짐한다.
그것이 계속 같이 일하고 싶은 시니어 PO를 보며 배운 첫 번째 태도였다.
그걸 배운 나에게 있어 조언 속 감정은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는 더 이상 중요치 않게 되었다.
오히려 혼란스러운 것은 겉과 속이 다른 조언이다.
하루 종일 삽질하다 온 주니어가 짠해서 비효율적이라 생각하면서도 배움을 위해 일단 마무리까지 맡겨보려는 이타적인 마음일 수도 있고, 자신 또는 팀의 성과를 위해 일부러 여러 선택지를 조언해 다른 결정을 유도하는 이기적인 마음일 수도 있다.
순수하게 모든 조언을 긍정적으로 흡수하다 보면, 스스로 바보가 된 듯한 현타가 밀려오게 된다.
그런데 사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순 없다. 나 역시 비즈니스를 위해 개발자들을 데드라인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반대로 개발자들을 위해 비즈니스맨들을 반복 업무 노가다의 늪으로 끌고 오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아닌
'나에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고, 여러 공부 끝에 아래의 Ted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 속 조직 심리학자는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문화권의 3만여 명을 조사하였고, 안전하게 맞춰가는 "Matchers"가 가장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외대생들의 성적, 영업 사원들의 수익, 엔지니어들의 생산성 등 성과 중심으로 트래킹 해보았을 때, 가장 성과가 높은 집단도 낮은 집단도 Giver 들이었다. Giver들이 남들을 돕고 선의를 베풀면서 조직 및 기업의 이윤, 고객만족도, 고용 유지율도 더 높아지는 현상도 발견된 것이다.
그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고, 무엇보다 첫 번째는 Giver들이 지치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 바로 가벼운 선의를 베푸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지식을 공유하거나 피드백을 주는 등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Giver들을 서로 소개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영상에서는 하루에 5분 정도 직간접적으로 선의를 베푸는 '5분 선의'를 지향한다.
두 번째는 주는 사람이 성공하려면, 도움을 많이 요청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시로 아담 그랜트는 병동을 연구하던 중 특정 층에서는 간호사들이 도움을 많이 청하지만, 다른 층은 거의 그렇지 않다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알고 보니 해당 층들에는 간호사를 돕는 일만 하는 간호사가 배정되어 있던 것이다. 그런 역할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청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직장에서 무능해 보일까 봐,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보통 도움을 잘 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Giver는 도움과 요청에서 시작된다. 아무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조직을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잠재적) Giver들이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고, 누가 어떻게 이득을 취하는지 알게 되면 되려 Giver들이 혼동을 겪게 된다. 그래서 팀에 누구를 들일지, 즉 채용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Giver들만 채용하면 되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것 또한 아니었다. 9명의 Giver와 1명의 Taker로 구성된 팀이 있다면, 꼭 내가 아니어도 되기에 먼저 도와주지 않는다. 반대로 9명의 Taker &Matcher팀에 1명의 Giver를 투입한다고 해서 관대함이 향상되는 것도 아니다. "좋은데?! 저 사람이 우리 일을 다해." 하며 선의가 희생되기 때문이다.
핵심은 Giver를 채용하는 것보다, Taker를 솎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Giver(주는 사람)와 Matcher(맞추는 사람)가 남게 되니 Giver는 결과와 상관없이 선의를 베풀게 되고, Matcher는 일반적인 규범에 따라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Giver들이 야망을 갖고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서 목표를 쫓을 수 있게 된다면, 실제 사람들이 성공을 정의하는 방식도 바꿀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경쟁에서 이기는 얘기를 하는 대신, 성공은 돕는 것에 가깝다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앞선 단락에서 이타적이든 이기적이든 겉과 속이 다른 조언의 본심을 뒤늦게서야 알게 됐을 때. 즉 '순수하게 모든 조언을 긍정적으로 흡수하다 보면, 스스로 바보가 된 듯한 현타가 밀려오게 된다'라는 생각을 돌이켜보며, 나는 Matcher 성향에 가까웠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나도 Giver가 될 수 있을까?
오랜 고민 끝에 "좋은 사람 vs 나쁜 사람"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사람 vs 아닌 사람"으로 관계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상대방의 본심이 이타적이든 이기적이든 상관없이, 나는 내 마음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되게 당연해 보이는 문장 같아도 이러한 결심을 내기까지 많은 힘듦이 있었다. 그냥 1인분을 잘하는 PM/PO가 되어도 괜찮다. 그것마저도 사실 벅차다. 하지만 이를 넘어 "계속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타인의 본심이나 나의 이득을 재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속 함께 일하고픈 동료들에게서 배운 태도이자, 내가 오랜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이다.
아담 그랜트는 가장 의미 있게 성공을 이루는 방법은 '타인의 성공을 돕는 것'이라 말한다.
당신은 Giver입니까, Taker입니까?
p.s.
노래 가사처럼 나를 춤추게한 금주의 칭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