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긍정 May 23. 2021

누가 나를 좋아하는지 알려주는 앱. 쓰시겠습니까?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에는 좋알람을 잠시 비활성화 할 수 있다.

이 글은 서비스 기획을 빙자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좋아하면 울리는] 리뷰입니다.

BGM으로는 장범준의 <사랑이란 말이 어울리는 사람>을 권합니다.


오늘은 보고 싶어서 연락할 이유를 찾고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그냥 난 집이나 갈래
당신의 웃음 앞에선 나도 부끄러워지네요
이런 애틋한 감정이 나는 너무나 좋아요

- 사랑이란 말이 어울리는 사람 가사 中





 "사랑해"가 없어지는 세상

서비스 기획을 공부하며 생긴 하나의 부작용이자 직업병이 있는데, 자꾸 드라마나 영화 같은 픽션을 보면서도 사업가치와 고객가치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좋아하면 울리는]을 보며 '진심을 어떻게 아이폰에 동기화 하지?', '개인 정보 보호 정책은 어떻게 되는 걸까?', '정말 좋알람 시대가 온다면, 연애 코칭 클래스보다 해킹 클래스가 더 잘 팔리지 않을까?' 등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이내 현타가 밀려왔다. ʕʘ‿ʘʔ.. 일도 좋지만 감성을 잃지 말자! 그래서 이번 글은 로맨스 드라마 리뷰다. (큰 스포는 없습니다.)



먼저 드라마 내용을 짧게 설명하자면, 처음엔 고등학교에서 개발자인 덕구가 아이돌 연습생인 굴미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좋알람]이라는 어플을 만든다. 좋알람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안에 접근하면 알림이 울리는 앱으로, 설치 시 자동으로 나의 마음과 연동된다. 그래서 설치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확인할 수 없다. 대신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에는 좋알람을 잠시 비활성화할 수 있다.


서로의 마음을 대화가 아닌 좋알람 인증을 통해 확인하는 사람들.

좋알람이 울린다는 건 연애 감정을 의미한다. 좋알람은 진심을 증명해주고, 한 번도 그 확률이 틀린적 없다. 입소문을 탄 좋알람은 고등학생의 풋풋한 로맨스를 넘어 솔로 탈출을 부르는 좋알람 공략 베스트셀러 책과 콘텐츠, 좋알람 커플 요금제, 좋알람 인플루언서와 VVIP 행사 등을 만들어 내고, 심지어는 결혼식장에서 사랑의 선약 대신 좋알람 인증을 하기까지에 이른다.


하트가 넘치는 사회의 이면에는 소외되는 사람들도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좋알람이 울리지 못한 것이 속상해 집단 자살을 하거나, 스토킹범이 피해자의 좋알람을 울렸다는 이유로 "좋아해서 그랬다"는 변명이 진심처럼 비치기까지 한다. 어느새 세상은 "사랑해"라는 애정표현도, "그만하자"는 의사표현도 없이 서로의 휴대폰 화면만을 말없이 보여주며 그렇게 이별마저도 좋알람으로 인증하고 인정하게 된다.






 원치 않는 마음도 알게 된다면? 

드라마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각도로 묘사한다. 상대를 배려해 멀리서 앱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지켜보는 동성 간의 짝사랑도 있고, 진심을 숫자로 체감하다 보니 나를 향한 마음 하나쯤은 별 것 아니게 느껴지는 만인의 사랑도 있다. 키스를 하면서도 내 좋알람을 울리고 있을까 하며 상대의 진심을 궁금해하고, 내 친구가 내 남자 친구를 좋아한다는 원치 않는 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좋알람 인플루언서지만, 정작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겐 좋알람을 받지 못한 육조.


남녀가 썸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눈이 아닌 좋알람 인증 화면을 바라보는 장면은 정말 그런 세상이 오고 있는 것만 같아서 놀라기도 했다. 또 남자친구가 전 여자친구에게 좋알람을 울리는 모습을 보며, 연인 사이에서 나만 좋아하는 것만 같은 그 적나라한 기분을 과연 육조처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그 와중에 좋알람을 만든 회사는 솔로들을 위해 [당신이 좋아할 사람]이라는 매칭 어플까지 출시하며 사업성을 확장한다.


가끔은 카톡 프로필과 아이메세지  읽음, 슬랙과 디스코드 초록색 대화 활성화와 입력중 등이 얄밉다. 오롯이 상대방의 마음을 기다리던 설렘들이 그립달까. IT 기술의 발전과 함께 감정의 전달마저도 자꾸 빨라지는 기분이 들어 아쉽다. 요즘 손편지나 전화 같은 대화보다 텍스트와 이모티콘이 담긴 대화'' 보며 괜히 엔터도 얄밉다 ʕʘ‿ʘʔ 적응했지만 적응하고 싶지 않다. 엔터로 보내는 마음은 가벼울 수밖에 없다. 나는  글자  글자 마음을 담고 싶다. 그래서  글을 쓰는  좋고,  가치를 함께 하고 싶다.






 누가 나를 좋아하는지 알려주는 앱. 쓰시겠습니까?

카톡처럼 좋알람을 쓰는 게 너무나도 당연해진 세상이 온다면, 과연 나는 다운 받아서 쓸까?


한번 상상해보자. 좋아하는 사람이 나의 반경 10m 안으로 들어오면 그에게 알림이 가고, 그걸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함께 알게 된다. 그는 웃으며 다가올 수도 있고, 내가 진심을 전하기도 전에 거절해버릴 수도 있다. 좋알람을 설치한다는 건 사실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지금의 나는 내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보다 상대가 놀라거나 곤란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용기가 없는 건지,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큰 건진 사실 잘 모르겠다. 좋알람에 [나만 보기] 기능이 있다면, 그래서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결론은 또 드라마를 보며 어드민 기능을 아이데이션 했다 ⇡▽⇡ 쭈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