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빼기를 원하는 것에 홀로 더하기 하고 싶은 게 있다. 바로 얼굴에 난 점이다. 얼굴에 점을 많이 가지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점을 여러 개 찍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눈썹이다. 반쪽 눈썹을 타고난 바람에 매일 눈썹을 그리는 수고를 덜고 싶다.
한번은 친구의 눈썹이 마음에 들어서 나도 따라 문신을 하러 간 일이 있었다. 눈썹 산의 윤곽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는 시간을 거쳐 그대로 라인을 잡았다. 흡사 철제 만년필 같은 도구로 선을 한올 한올 그리듯이 그어내니 시커먼 눈썹이 만들어졌다. 짱구 같은 검은 눈썹이었지만 1~2주에 걸쳐 점점 연해진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상처가 덧나지 않게 매일 조금씩 바세린을 발라야 했다.
익숙해지는 시간보다 낯설게 느껴지는 시간이 더 길었다. 상처로 만들어낸 선들이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찐득찐득한 것을 아주 싫어하는 바람에 바세린을 바르는 작은 수고도 띄엄띄엄 이어졌다. 결정적으로 리터치를 받지 않았다. 눈썹 문신 세계에서 리터치는 '종지부'를 찍는 역할이다. 리터치를 받지 않자 문신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연해졌고 잠깐의 임기응변처럼 언젠가 사라져버렸다.
아무래도 문신으로 남는 것이 싫었던 걸까? 몇 년 후 한 번 더 해보았지만 같은 이유로 여전히 '영구' 문신을 가질 수는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눈썹을 잘 그리는 편은 못됐다. 우선 원하는 라인을 정확하게 구현하지 못하고, 왼쪽 오른쪽 모양이 다르고, 매번 그릴 때마다 달라져서 일관성이 없다. 직접 그리는 한계가 있으니 당연히 매일 눈썹 모양이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 차이가 미묘하지 않고 꽤 널뛰기이다. 어떤 날은 짱구, 어떤 날은 매우 짱구, 어떤 날은 갈매기, 어떤 날은... ...
반쪽 눈썹이라고는 해도 눈썹 산을 위아래로 두고 잡풀처럼 난 털은 꽤 야생이다. 부지런하게 면도기로 다듬어줘야 하는데 생각보다 귀찮은 작업이다. 다듬은 날을 꼽아야 할 정도로 눈썹 다듬기에 꽤 인색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아주 마음이 괴로운 해에 길 가다 무작정 점집에 들어갔다. 힘든 마음을 쏟아 놓기라도 하고 싶었던 날들이었다. 그곳은 점도 보고 관상도 보는 곳이었는데 기억에 남는 건 점집 주인이 내 눈썹을 보고 호통을 친 것이다.
관상을 보던 중 눈썹에 점집 아저씨의 시야가 도착하자 목소리가 날로 커졌다. 이게 뭐냐고, 좀 깔끔하게 다듬고 다니라고 목소리를 드높이셨다. 처음이었다. 누가 내 눈썹을 보고 그렇게 다그친 일은. 당시에는 곤란하고 당황스러웠지만, 그 사건이 '눈썹 정리=깔끔한 인상'이라는 생각을 장기 기억 창고에 넣어줬다.
꼭 좋은 계기가 아닌 것도 좋은 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걸까? 그 뒤로 비록 눈썹은 잘 못 그릴지언정 (그렇다. 아직도...) 눈썹 다듬기만은 부지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