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다. 이쯤 되면 곱슬기가 넘실대는 머리카락으로 마음에 소용돌이가 인다. 속된 말로 ‘돼지털’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군집을 벗어나 한 올 한 올 솟아오른다. 외출이 있을 때면 고데기 손질이 필수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을 알아주듯 고데기도 재빨리 달아오른다. 뜨거워진 고대기를 힘있게 쥐고 몇 올씩 나눠 그 뿌리부터 차분하게 다듬는다.
바깥은 여름, 6월 중순이 되면 우리네 모발이 여지 없이 장마철의 습기를 제습기처럼 빨아들이고야 만다. 제아무리 차분하고 얌전하게 길들인다 해도 곱슬머리는 그저 제 소임을 다할 뿐이다.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책 없이 주책을 부린다고 책망할 수가 없다.
스트레이트 펌을 하는 일은 인상의 실루엣을 수비하는 일이다. 그대로 두면 잡초가 몇십 개씩 피어난 듯 머리 위에 곱슬기가 날뛴다. 그 실루엣을 드러낸 얼굴은 지저분한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그래서 스트레이트 펌을 한다. 아무런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도 게을러 보이는 꼴이 싫어서.
곧게 펴진 실루엣의 끝은 자주 C컬로 마무리한다. 그러다 한동안은 실루엣을 수비하는 일을 미루고 또 미뤘다. 오랫동안 머리를 돌봐준 원장님이 미용실을 떠났고, 내심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불안해서다. 장마철을 견딜 자신이 없어 몇 달 만에 실루엣을 수비하러 나섰다. 이윽고 우려하던 일도 벌어지고 말았다. S컬 머리가 됐다. 맘에 들지 않아 필사적으로 수비했던 실루엣인데… 속마음이 전해졌는지 다음날, 염려 섞인 전화가 왔다. '펌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나와서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손봐드릴 테니 다시 들르실래요?'
가벼운 기분으로 예약 날을 헤아렸다. 그런데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니 오잉? 뭔가 예상을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한껏 머리를 말린 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꽤 근사해 보였다.
'이거 이상하네. 왜 마음에 드는 거지?'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 뜻대로 되지 않은 모습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C컬, 그건 그거대로 좋았지만 S컬, 이건 또 이대로 좋은 거다. 내가 왜 이걸 그러게나 필사적으로 막은 걸까? S컬이 뭐라고! 오히려 이 편이 인물을 더 생기 있어 보이게 하는데?. 머리 손질을 다시 하려는 마음을 고이 접었다. 한편으로 다른 의문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