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와인이 좋아"라고 말하자 남편이 말했다. "와인 마시는 거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의문이 계속 회오리쳤다. '와인을 자주 마시지 않았다면 내가 와인을 좋아한다고 할 수 없는 건가? 좋은 건 확실한데...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는 건가? 이 의문은 대상을 바꿔서 계속 되었다. 스스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데 남편이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과 빈도 사이에서 생긴 의문은 한동안 선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랜 시간 그 의문을 덮어 두지 않고 마음에 품었다. 좋아한다는 생각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좋아한다고 말하면 되지 무엇이 애매한 걸까? 남편이 의아해 한 부분을 되 짚으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좋아하는 데 왜 안해?' 하는 마음 아니었을까? 그의 눈에는 좋아하는 것을 향한 행동이 보이지 않았던 거다. 와인을 마시면 늘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곁에 두는 행동은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아하면 곁에 두고 관계 맺는 시간이 필요하다. 식물을 좋아하면 물을 주고, 좋아 하는 책이 있으면 꺼내 읽는 것 처럼 말이다. 꼭 절실하게 찾게 되는 그런 애절한 관계가 아니어도 된다. 다시 떠올리고 곁에 두고 움직이는 관계를 맺어 보자. '주저 없이' 좋아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곁에 두고 관계 맺는 일이 필요하다.
곁에 두고 행동해야 진정성이 느껴진다. 하고 나서 좋은 일을 '좋아서 하는 일'로 이어가야겠다. 생각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고 행동하는 데 시간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