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룩소르
이집트의 휴양지 후르가다에서 하루 푹 쉬고 다음 날 룩소르로 향했다. 본격적인 이집트 여행이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미리 예약해 둔 택시에 짐을 싣고 탑승했다.
젊은 기사는 운전 내내 특유의 소리를 내며 해바라기씨를 하나씩 까먹었는데,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과속을 했다.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과속이라니... 심지어 고속도로가 아닌 시내 도로에서는 급출발과 급제동을 수없이 반복하는 기사. 속은 울렁거리고 몸은 자꾸 앞으로 쏠리니 점점 정신까지 피폐해져 갔다. 동남아에서 별별 택시들을 다 타 봤지만 진짜 이 기사는 역대급...!
지옥 같았던 4시간 반을 버티니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기사에게 약속했던 돈을 건네니 대놓고 팁을 내놓으란다. 팁은커녕 내 피폐해진 몸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병원비를 청구하고 싶은데...? 기사가 아랍어로 말을 해서 못 알아듣는 척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작은 남자아이가 나타났다.
“운전했으니 팁을 달래요.”
넌 누구니...? 실랑이할 기운도 없어서 팁을 주고 서둘러 숙소로 들어가려는데, 아이가 쪼르르 쫓아오면서 자기가 영어로 통역해 줬으니 돈을 달란다. 하... 본격적인 이집트 여행의 시작인가.
여행자에게는 시간이 금이기에 숙소 체크인 후 짐만 내려놓고 야경이 멋진 룩소르 신전으로 향했다. 도시 자체가 거대한 유적지인 룩소르. 룩소르 땅을 밟으니 기대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택시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가니 또 그 아이가 나타났다! 택시비로 쓸 현금을 작은 돈으로 바꾸기 위해 가게에서 물 한 병을 사려는데, 아이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자기가 가서 얼마냐고 물어본다.
“10파운드래요!”
뭔가 미심쩍어 보여서 무시하고 그 옆 가게로 들어가니 또 쪼르르 쫓아와서는 먼저 물어보는 아이.
“똑같이 10파운드래요!”
아... 피곤하다. 빨리 계산하고 나가서 택시를 잡으려는데, 이번엔 아이가 어디선가 봉고차를 대령하며 어디까지 가냐고 묻는다.
“룩소르 신전까지 100파운드래요!”
그저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오케이하고 봉고차에 탑승하니 아이가 다급하게 돈을 달란다. 내가 도와줬으니 100파운드를 달라고. 이 아이는 이러려고 영어를 공부했을까? 어렸을 때부터 이런 거나 배운 일고여덟살쯤 됐을 듯한 아이가 귀찮으면서도 안타까웠다.
그나저나 물 한 병이 10파운드인데 100파운드를 달라고? 아이는 빨리 돈을 내놓으라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슬슬 열이 받으려고 하는 찰나, 친구가 먼저 나서서 강하게 타이르며 50파운드를 주고 상황 종료. 다시는 만나지 말자 아이야.
당장 폐차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이는 텅 빈 누더기 봉고차에 올라타니 갑자기 급가속을 하며 출발했다.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는데 또...?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봉고차에 문이 없다! 아니, 문은 달려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의 용도로 사용되지 못하는 상태인 것 같기도 하다. 어떡하지? 일단 최대한 반대쪽으로 붙어서 앉자!
당연히 안전벨트도 없는 초고속으로 달리는 봉고차 문밖으로 튕겨 나갈까봐 어디든 붙잡고 버티기 시작했다. 큰길을 지나 사람들로 북적이던 좁은 룩소르 시장을 관통하면서도 속도가 줄지 않는 봉고차. 다른 손님들이 봉고차에 탑승하고 싶어서 손짓을 하거나 소리치는데, 기사는 싹 무시하고 오직 룩소르 신전만을 바라보며 달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현지인들이 5파운드씩 내고 타는 봉고차에 100파운드를 내고 탔으니 이 봉고차는 우리가 전세낸 거였다! 아이한테 벗어나고 싶어서 무작정 타겠다고 한 봉고차도 바가지고, 심지어 아이한테 수수료까지 지불했으니 어쩜 코리안 호구가 따로 없네.
룩소르 신전에 도착했다며 뒤를 돌아보며 씨익 웃는 기사. 그의 얼굴엔 기분 좋은 표정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렇게 100파운드를 건네고 우리는 문 없는 봉고차에서 무사히 내렸다.
그래, 오늘 하루 내가 무사히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할 수밖에.
인샬라!(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