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출산기
잠든 지 한 시간 만인 2018년 5월 22일 자정. 통증으로 잠에서 깬 나는 오늘 긍정이가 세상 밖으로 나올 것임을 직감하고 서둘러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미리 캐리어에 병원과 조리원에서 사용할 짐들을 챙겨놓았기에 잠옷만 갈아입고 빠르게 출발했다. 평소에 검진하러 다니던 병원에 출산하기 위해 도착하니 싱숭생숭한 마음. 그렇게 새벽 1시에 병원에 입원해서 내진을 받았는데 자궁문은 겨우 1cm 열려 있었다. 난 이미 통증으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는데... 심지어 내진이 이렇게 아픈 거였다니.
5분 간격으로 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겨우 참아내며 새벽 5시까지 4시간을 참으니 두 번째 내진을 하러 간호사 선생님이 오셨다. 그리고 6시간이 지난 7시에 드디어 무통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으니 척추에 차가운 느낌이 들면서 곧 가라앉기 시작한 통증. 무통 만세!!! 사실 6시간 동안 너무 아파서 첫 번째 무통주사는 들어가는 느낌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다. 진통으로 지친 나는 무통주사 덕분에 조금은 잘 수 있었는데, 통증만 없을 뿐 자궁이 수축하는 이질적인 느낌은 계속 들었다. 그럼에도 통증이 없으니 무통천국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자궁문은 아직 2.5cm밖에 열리지 않았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진통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고, 무통주사를 맞은 지 2시간이 지나니 주사 효과는 거의 사라졌다. 왼쪽 허벅지는 아직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오른쪽 허벅지는 원래 상태로 돌아오더니 통증이 강하게 밀려오기 시작했다. 또 악몽 같은 진통의 시작이구나. 통증으로 인해 정신없는 상황에서 무통주사를 다시 놓아달라고 요청하니 세 번째 내진을 했다. 여전히 4cm밖에 열리지 않았다며 두 번째 무통을 9시 반에 놓아주셨다. 이날은 석가탄신일이라 평소 담당해 주시던 의사 선생님이 아닌 공휴일 당직 선생님이 계셨는데, 내 상태를 보고는 진행 속도가 너무 느리니 일단 지켜보자고 말씀하셨다.
9시 반에 두 번째 무통주사를 맞고 시름시름 앓면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는데, 이번에도 무통이 오래가지 않았다. 한 번 맞으면 3~4시간은 효과가 지속된다고 들었는데, 난 첫 무통주사와 마찬가지로 금방 효과가 약해지더니 그대로 다시 진통이 시작되었다. 주사를 한 번 더 맞아도 되는지 문의하니 네 번째 내진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꽉 찬’ 4cm 열린 상태라고...
진심으로 절망적이었다. 한 텀의 무통주사빨이 끝날 때까지 1cm도 안 열렸다니. 이미 자정부터 시작된 진통은 10시간째 지속되고 있는데... 이쯤 되니 나도 점점 지치고 정신이 혼미해져 진통이 쓰나미처럼 느껴졌다. 2분마다 찾아오는 자궁 수축의 고통이란... 엉덩이부터 묵직해지면서 자궁이 점점 수축되어 오다가 급 자궁을 비틀어 쥐어짜는 느낌. 세상에 이런 고통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생에서 가장 큰 통증이었다.
정오가 다 된 시간, 세 번째 무통주사를 맞고 무통주사 효과가 시작되는 10분 후까지 무서운 진통을 이겨냈다. (진통 내내 힘주는 소리가 계속 나와서 오랜 시간 목소리를 냈더니, 출산이 끝나고 나서는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세 번째 무통주사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주사를 맞고 10분 동안 얼른 무통천국이 오기만을 바랐는데 진통이 그대로 느껴졌다. 내가 너무 아파하니 간호사 선생님이 덜 아픈 자세를 알려주시고, 이 와중에 난 따라해 보겠다고 애쓰고... 이젠 쌩으로 진통을 견뎌내야 하는데 처음 견뎠을 때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참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어진 몸상태였다. 힘을 낼 수 있었으나 그 힘조차 진통 앞에서는 와르르 무너지는... 간호사 선생님이 대변을 보듯이 힘을 주라고 해서 정말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다. 진통 내내 간호사가 내진을 계속해서 더 진통이 자주 오니 죽을 것 같았다. 이쯤 되니 내진의 굴욕이건 뭐건 아무 생각이 없더라. 그저 우리 아기가 빨리 세상 밖으로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만 있었다.
아무리 아파도 울지는 않았는데, 진통 12시간이 지나니 저절로 눈물이 나오면서 마치 짐승이 우는 듯한 신음 소리가 내 입에서 계속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진척이 없으면 제왕절개를 고려해 보라고 말씀하셨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자궁문이 열리긴 했으나 13시간이 지나니 나도 참는 데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진심 너무 아파서 못 견디겠더라. 결국 울부짖으며 제왕절개하겠다고 말씀 드리니 간호사 선생님이 참으라고, 아기를 위해서 좀 더 해보자고, 계속 호흡하라고 하시는데, 호흡을 하면 진통이 더 심해서 계속 신음소리만 나왔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을 견뎌냈는데, 오랜 진통으로 나뿐만 아니라 아이도 위험해지니 제왕절개 이야기가 나왔다. 의사 선생님이 내진을 해 보더니 이제 7cm 이상 열렸는데, 1시간은 더 지나야 다 열릴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이상 참기 어려웠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내 몸은 1시간이 하루처럼 느껴질 정도로 체력의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다.
결국 제왕절개 준비가 시작되었는데, 수술 준비 시간만 40분 이상 소요되어 그 사이에 난 또 죽을 듯한 진통에 몸부림을 치며 사지를 뒤틀었다.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마취과 의사 선생님이 “산모님, 조금만 힘내세요!”를 몇 번 외치시는 걸 들으며 진통 중에 서서히 의식이 사라져 갔다. 산소호흡기를 끼는 순간을 마지막으로 전신마취에 들어간 것이었다.
자정에 도착한 병원에서 15시 29분에 출산을 했다. 의식을 회복하니 가족분만실에서 누워 있던 나. 정신도 없고 목소리도 안 나오는데 눈앞에 긍정이가 찾아왔다. 소중한 우리 아기... 엄마가 나약해서 결국 자연분만에 실패하고, 우리 아기도 15시간 반 동안 고생만 했네. 그땐 정말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서, 우리 긍정이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해서,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는데 이제 와서 제왕절개 후 통증에 후회를 하고 있는 미련한 엄마인 나. 우리 아기 태어나자마자 안아주지도 못해서 미안한 마음만 한 가득인데, 어느새 곁에 찾아와서 엄마 볼에 뽀뽀해주고 안아주는 아기가 얼마나 예쁘던지. 건강한 모습으로 엄마한테 찾아와줘서 고마워!
수술이 끝난 후 남편한테 들은 충격적인 말은, 난소에 기형종이 있어서 수술하는 김에 떼어냈다는 이야기였다. 기형종이라니...? 사진을 보니 까맣고 빨갛고 하얗고 징그러웠던 물체. 기형종이라 사람의 머리카락과 치아도 보였다. 종양이 사람인 것마냥 착각해서 머리카락과 치아가 생성된다고. 제왕절개를 했으니 미세하게 기형종만 잘 떼어냈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안도하면서, 복강경으로 수술하면 난소도 같이 절제해야 한다는 말씀에 또 한 번 놀랐다. 출산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기형종까지 겹쳐서 갑자기 혼란스러워진 머릿속. 결국 긍정이가 “엄마~ 여기 이상한 게 있어요!”하고 알려주느라 끝까지 안 나온 건가.. 하는 그야말로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1석 2조였던 제왕절개라니.
입원실로 옮겨서 출산 후 치료를 시작했는데, 두꺼운 바늘이 꽂히고 각종 주사들이 투입되고 또 투입되기 시작했다. 최소 5종은 투입된 듯했다. 마취가 풀리기 시작하니 무통을 맞아도 통증이 느껴졌다.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더 참아보는 건데... 하는 후회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걸 보니 내가 이제는 살 것 같았나 보다.
고된 출산에 이어 앞으로 더 고된 육아가 시작될 줄은 이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