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비워야만 보이는 것

여백을 파악해 내면, 진짜 중요한 것이 드러난다.

by TH

우리가 눈으로 보는 시야를 구분할 때, 초점 근처를 인식하는 초점부 시각과 주변을 인식하는 주변부 시각이 있다. 시야의 중심부를 통해 특정 대상에 집중하여 세부정보를 인식하는 초점시각 모드와 그 주변부를 인식하여 공간적인 관계를 파악하는 주변시각 모드가 함께 작동한다. 이 두 시각 모드는 독립적으로 작동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보완해 준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할 때에는 전방의 신호등이나 도로표지판을 주의 깊게 파악하는 동시에 측면차량의 위치를 감지하거나 속도, 미세한 방향을 인식하여 다른 감각기관과 협력하여 안정적인 운행을 가능하게 한다.


일을 할 때에도 비슷한 능력이 필요하다. 해야 할 일은 너무 많고, 하나하나 모두 중요한 일들이다. 하나 처리하기도 전에 또 다른 질의요청이 들어오고, 오늘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시작도 채 하지 못하고 있다.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점점 늘어난다. 도화지에 그려야 할 그림이 너무 많아서 빈 공간 찾을 틈도 없이 꽉 차 있다. 어느 한 군데 집중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니까 허투루 할 수는 없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해서 일의 퀄리티를 희생시킬 수는 없다. 이게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의 방식들이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일을 매듭짓고 마무리한다.


하나씩 집중해서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일들에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다. 내가 집중할 수 있는 곳에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주변부 영역에는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다. 이러한 주변부 시각에서는 협업을 일으켜서 전체적으로 일을 진행시킨다. 그렇게 여유를 확보하고 나면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게 되는데, 그래야만 어느 것이 여백이고 진짜 중요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이따금씩 우리는 진짜 중요한 일보다 중요하지 않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일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곤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여백을 파악해 내는 것이다. 어떤 것이 주변부에 해당하고 중심부에 해당하는지 봐야 하는 것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말 중에 흐름을 보려면 흐름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휩쓸린 물은 물밖으로 나와야 인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 하는 일들을 가끔씩은 대충대충 해보자. 그렇게 해보면 당장 없었더라도 괜찮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고 진짜 집중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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