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끄러운 세계에서 발견한 균열 하나

성해나 <스무드>

by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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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의 『혼모노』 두 번째 작품 「스무드」를 처음 읽었을 땐, 영 감이 오지 않았다. 이야기의 흐름은 모호했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드는 장면에선 불쾌감이 먼저 들었다. 굳이 왜 저런 인물들을 중심에 두었을까. 쉽게 납득되지 않아 책을 덮고 다른 작품으로 넘어갔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스무드」를 펼쳤다. 여러 해설을 곁들여 읽고 나서야, 이 작품이 전하려는 낯선 감정들과 감춰진 균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듀이는 한국계 미국인 3세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한국말도, 김치도 모른다. 아버지가 위스콘신 출신이라 믿으며 자랐고, 스스로를 철저히 미국인이라 여긴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그를 ‘완전한 미국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언제나 그에게 묻는다. “너, 어디서 왔어?”라는 질문 속에서 그는 언제나 미국 바깥으로 밀려난다.


처음 한국을 방문한 듀이는 낯설고 어색한 공간에 발을 들인다. 고급 아파트의 갤러리, 미쉐린 셰프의 식사, 정제된 표정의 사람들.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지만 그 어디에도 그가 상상하던 ‘진짜 한국’은 없다. 너무 매끈하고 조용한 세계, 오히려 현실보다 더 비현실적인 공간.

그러다 길을 잃고 방전된 휴대폰을 들고 종로 거리를 헤매게 된 그는, 성조기와 태극기를 나란히 든 시위 무리에 휩쓸린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그에게 떡과 도시락을 건네며 반갑게 인사한다. “우리도 영어 좀 해요!”라고 말하는 그들의 말은 서툴렀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만은 진심 같았다.

미스터 김이라는 남자는 그에게 말한다. “당신도 열사예요. 우리처럼요.” 그리고 덧붙인다. “당신은 보물이에요.” 그 말은 듀이가 아버지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낯선 나라의 광장에서, 낯선 사람들이 건넨 그 말은 너무도 따뜻해서 이상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듀이가 진심을 느낀 순간은 미국도 한국도 아닌, 가장 극단적인 집단의 한복판이었다. 그 아이러니는 결코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환대인지, 착각인지, 위로인지, 오해인지. 그러나 그 감정은 분명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모든 혼란이 담겨 있다.
“아버지, 저 지금 이승만 광장에 있어요. 아주 좋은 사람들과 함께요.”


듀이가 마주한 풍경은 어떤 해답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풍경은 독자에게 말없이 거울을 들이민다. 선명한 줄 알았던 세계가 사실은 무수한 착시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읽고 나서 오래도록 남는 건 뿌연 질문들이다.


낯선 환대, 익숙하지 않은 위로.
나 역시 어떤 공간에서, 누군가의 다정한 오해에 마음이 무너졌던 순간이 떠올랐다.

어쩌면 『스무드』가 보여주는 진실은, 우리가 가장 ‘매끄럽다’고 믿는 곳에서부터
작은 균열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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