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길 <호수- 다른 사람>
강화길의 『호수-다른 사람』은 사고로 병원에 실려온 한 여성을 둘러싼 이야기로 시작된다. 겉보기에 이 작품은 미스터리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남긴 의문의 한 마디, "호수에 두고 왔어." 그리고 그 말을 붙잡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남자친구, 그리고 아무것도 명확히 말하지 않는 친구. 하지만 이 소설이 끝까지 바라보는 곳은 사건의 진실이 아니다. 오히려 말해지지 않은 것들, 스치듯 지나간 장면들, 누군가의 침묵 속에 감춰진 감정과 권력의 결들을 드러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말은 하나하나 조심스럽고, 때론 지나치게 친절하다. 그 안에는 무언가를 감추려는 기운이 있다. 진심처럼 들리지만, 그 진심은 때때로 상대방을 구속한다. 이한의 말투가 그렇다. 부드럽지만 설득하려는 힘이 있고, 다정한 것 같지만 진영을 계속 어떤 자리에 몰아넣는다. 말은 사과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본인의 통제력을 회복하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 진영은 점점 확신하게 된다. 이 남자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작품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내 주변, 혹은 내 안의 누군가가 했던 말들. 폭력은 꼭 주먹으로만 행사되지 않는다. 때로는 말로, 침묵으로, 혹은 ‘네가 예민한 거야’라는 식의 태도로 전해진다. 진영이 떠올리는 과거의 연인도 그랬다. 그녀의 목을 조른 후, 한참이 지나서 그가 남긴 말은 “너는 장난도 못 받아주는 사람이야.”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고, 폭력은 웃어넘길 일이 되어버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영은 전율을 느낀다. 말이라는 것은 때로 사과보다 더한 위협이 되기도 한다.
진영은 민영과의 여름날을 떠올린다. 긴팔을 입고 나타난 친구, 팔에 어색하게 자리한 멍 자국,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묻지도 않았던 시간. 그 순간은 찰나였지만, 진영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 왜 묻지 않았을까. 그 질문은 독자인 나에게로도 옮겨온다. 우리는 때때로 본 것을 못 본 척하고, 들은 것을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피해자의 침묵을 가벼이 여기고, “그럴 리 없어”, “예민한 거 아니야?”라고 말하며 그들을 검열의 늪으로 밀어 넣는다.
이 소설이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아무것도 명확히 말하지 않으면서도 진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감각을 끝내 놓지 않는 데 있다. 진영이 호수로 들어가는 장면은 그런 감각의 결정체다. 이한은 그녀에게 함께 들어오라고 한다. 그녀는 처음엔 거절하지만, 결국 스스로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선택이자, 도망칠 수 없는 직면이다. 물속은 차갑고 깊다. 바닥에 손이 닿지도 않고, 감지되는 어떤 무거운 존재.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작가는 끝내 그것의 정체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있다. 그것은 민영이 ‘두고 왔다’고 말한 ‘무엇’이며, 진영은 그것을 손끝으로 감지한다.
그녀는 진실을 꺼내지 못했지만, 중요한 건 진실을 건져 올렸느냐가 아니다. 침묵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리에 들어갔고, 몸을 던졌으며, 말해지지 않았던 것을 응시했다는 점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진영은 폭력을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더는 외면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그녀가 끝내 내뱉는 말, “나는 해야 할 일을 했다.” 그 말은 어떤 사과보다 더 분명하고, 어떤 증거보다 더 단단하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나는 오랫동안 물속을 떠올리게 된다. 말하지 않아도 진실은 거기 있었다.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 그것이 이 소설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중요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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