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중
우리는 매일 걱정 속에서 살아간다. 어제의 후회, 오늘의 불안, 내일의 불확실성. 때로는 너무나 사소한 일조차 우리의 마음을 잠 못 이루게 만든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만약, 정말로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의 글에서 그런 한 사람을 소개한다. 이름은 안톤.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웠고, 누구보다 가난했지만 모두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다.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외면하거나 도피한 이가 아니다. 오히려 도시 한복판에서 누구보다 따뜻하게 살아낸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참 이상하다. 직업도 없고, 집도 없고, 은행 통장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고, 반갑게 맞고, 부탁하고 싶어 한다. 그는 필요한 만큼만 받고, 필요하지 않을 땐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 마치 신뢰라는 이름의 통장에 사람들의 마음을 저축하듯, 그는 매 순간 진심으로 행동했다.
그 진심이란 무엇일까. 돈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 태도, 생색내지 않고 돕는 마음, 대가를 따지지 않는 손길. 그 모든 것이 안톤이라는 인물 안에 있었다. 작가는 그를 처음엔 그저 '거지'라 생각했지만, 점점 '가장 품위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안톤이 점점 커진다. 도시를 거니는 그의 걸음, 누군가의 신발을 수선하는 손, 시장에서 사과를 파는 웃음. 그는 이 도시의 주인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지만 어디든 자유롭게 드나들고,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 수 있다. 가진 것이 없기에, 더 넓게 나눌 수 있는 사람. 그게 안톤이었다.
작가는 어느 날, 지붕에서 물이 샌다는 이유로 안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날 이후 안톤은 조용히 와서 고쳐주고, 말없이 떠난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외투와 옷가지, 신발을 꺼내 건넸을 때, 그는 필요한 것만 고르고, 나머지는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주겠다고 한다. 그의 말에는 강요도 없고, 감사도 바라지 않으며, 오직 "흘려보냄"이 있었다.
그 장면이 유독 오래 남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물건을 전한 적이 있었던가. 어떤 계산도 없이, 누군가를 돕기 위해 무언가를 꺼내어 본 적이 있었던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움직인다. 월급이 조금 더 늘면 나아질 것 같고, 수익률이 올라가면 불안이 줄어들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비교는 끊이지 않고, 욕심은 끝이 없다. 내 집값은 오르길 바라면서 남의 집값이 오르면 괜히 배가 아프고, 세금은 억울하고, 나눔은 멀게 느껴진다.
그런 우리에게 안톤은 말하지 않고 보여준다. 삶이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도 된다고. 정말 필요한 건 많지 않다고. 우리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소유의 부재가 아니라 신뢰의 결핍이라는 것을, 그는 조용히 증명해낸다.
읽고 나면, 어깨에 올려진 따뜻한 손처럼 마음에 힘이 빠진다. 좋은 의미의 힘 빠짐. '아,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구나.' 하는 안도감. 내가 나 자신을 믿는다면, 그렇게 복잡하게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는 믿음.
욕심을 덜어내는 연습, 나를 믿는 연습.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