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닳아버린 시대에

슈테판 츠바이크 <센강의 낚시꾼>

by 지나

슈테판 츠바이크는 프랑스혁명의 절정, 루이 16세의 처형이 벌어진 그날, 센강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낚시를 하던 사람들을 기록했다. 한때는 그들이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전쟁을 직접 겪으며, 그는 그들의 침묵이 무관심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적인 피로와 생존의 방식이라는 걸 깨닫는다. 처음엔 그 심정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나도 그의 생각에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제목 없음 (1150 x 1024 px) (5).png


지금 우리가 사는 2025년은 어떤가.

뉴스를 켜면 전쟁, 혐오, 자연재해, 사고가 쏟아진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이 울고 다치고 죽는다. 그럼에도 우리 삶은 계속된다. 우리는 여전히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출근길에 하늘을 본다. 누군가는 낚시를 하고, 누군가는 웃는다. 이런 풍경이 죄책감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세상이 아픈데 나는 왜 이렇게 무감한 걸까, 그런 질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해준다. 감정도 에너지라고. 너무 오래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있으면 결국 마비되고 만다고. 그것은 냉정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아팠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건 속에서 우리는 매번 전율할 수 없다. 마음이 견딜 수 없는 만큼의 고통이 누적되면, 차라리 무감각해지려 애쓰게 된다. 무심해 보이는 얼굴 속에는 사실 너무 많은 감정의 피로가 깃들어 있다.


생각해보면, 낚시꾼은 그저 자기의 하루를 살고 있었을 뿐이다. 그는 아마 혁명의 초반엔 거리로 나가 민중과 함께 외쳤을 것이다. 바스티유가 무너질 땐 그의 심장도 요동쳤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이 길어지자, 피로가 쌓였다. 목숨이 무너지는 장면을 지켜보며 그는 어쩌면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나는 무엇을 지킬 수 있을까?" 그리고는 낚시대를 들었을 것이다. 조용하고, 사적인,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하루의 선택.


『센강의 낚시꾼』은 그런 장면을 조용히 꺼내 보이며 말한다. 모든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견딘다고. 누군가는 싸우고, 누군가는 찌를 바라보며 버틴다. 그리고 그 어떤 방식도 틀리지 않았다고.

그런 글을 읽으며 나도 문득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나 역시 매일 뉴스를 보며 가슴을 치다가도, 어느 날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화면을 닫는다. 그런 내 모습이 못내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안다. 그것도 감정의 방식이라는 걸. 내가 무뎌진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지나왔기 때문이라는 걸.


결국 이 책은, 거대한 역사의 중심보다 그 곁에 있는 ‘하루’를 응시한다. 소란 너머에서 조용히 살아남는 사람들. 그들의 고요한 표정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회복력, 그리고 작은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제목 없음 (1150 x 1024 px) (6).png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오늘에도, 강물은 흐르고 찌는 떠 있고, 사람은 살아간다.

그러니 오늘 하루쯤은,

강물 위에 떠 있는 찌를 바라보듯

나의 마음도 잠시 멈추어 바라봐도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레고르의 방 앞에서, 나를 마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