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타 사야카 <신앙>
밤하늘 아래, 현실과 환상이 뒤엉키는 순간. 무라타 사야카 『신앙』은 믿음의 본질을 묻는다. 현실만 붙잡는 것도 신앙일 수 있을까?
별빛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풀잎에 맺힌 물방울에서 흙 냄새가 피어올랐고,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의 숨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그때 문득,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움직이는 건지, 아니면 하늘의 별들이 흐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무라타 사야카의 단편소설 『신앙』은 바로 그 불확실함에서 시작한다. 눈앞의 현실이 진짜인지, 우리가 믿는 것들이 어디까지 환상인지 되묻는 이야기다.
나가오카는 언제나 현실을 붙들어온 사람이다. 축제에서 머리띠를 사려는 친구에게 “원가 100엔도 안 해”라며 말리고, 명품 가방을 들고 있는 연인에게 “시중에선 3천 엔이면 살 수 있어”라며 진실을 들이댔다. 그의 말은 정확했지만, 그 정직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칼날로 변했다. 친구들은 그와 거리를 두었고, 연인은 지쳐 떠났으며, 여동생은 차갑게 말했다.
“언니의 현실이야말로 사이비 같아.”
그 말은 오래도록 나가오카의 가슴을 찔렀다. 현실만 믿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신앙일 수 있다는 역설이 그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된다. 멍청하지만 어딘가 집요한 동창 이시게와, 한때 정수기 다단계에 속아 빚더미에 올랐던 사이카와였다. 이시게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사이카와는 그 속에서 교주가 되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이카와의 눈빛은 누구보다 순수했다. 그녀는 사기를 치면서도 진심으로 그들을 구원하고 싶어 했다.
“시작은 사이비여도, 모두가 행복해진다면 그건 진짜가 되는 거 아닐까?”
그 말은 허황돼 보이면서도 묘하게 설득력 있었다. 현실과 거짓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지점에서, 나가오카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깨닫는다. 현실만 붙잡고 살았던 자신은 아무도 구원하지 못했고, 정작 스스로도 행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대로 환상을 믿는 사람들은 서로 기대며 위로를 얻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고백한다.
“나도 속는 재능을 가지고 싶어.”
이 말은 포기이자 해방이었다. 진실이 칼날이 될 때, 차라리 거짓 속에서라도 숨 쉬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나가오카는 마침내 현실의 경계선을 넘어가려 한다.
소설의 절정은 천동설 테라피 장면에서 찾아온다. 깊은 산속, 옷을 벗고 하얀 천으로 몸을 감싼 사람들.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빛 아래, 그들은 원형으로 누워 서로의 손을 잡는다. 사이카와의 목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울린다.
“하늘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늘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숨을 고르는 순간, 별빛이 내려앉는 듯한 착각이 들고 공기의 냄새마저 달라진다. 사람들은 하나둘 환상을 본다. 페가수스, 스핑크스, 악마, 용… 그리고 나가오카는 외친다.
“현실이 보입니다!”
사이카와는 대답한다.
“당신은 현실에 세뇌된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평생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타투입니다.”
이 대화는 작품의 핵심을 관통한다. 현실만 믿는 것도 또 다른 세뇌라는 아이러니. 믿음과 환상의 경계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왜 믿는가’라는 질문이다.
무라타 사야카의 작품은 언제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흔든다. 『편의점 인간』에서 그는 사회적 규범 속에서 소외된 개인을 그렸고, 『사육』에서는 욕망과 금기의 충돌을 파고들었다. 『신앙』은 그 연장선 위에 서 있다. 이번엔 믿음과 현실, 그리고 우리가 소비하는 가치의 본질을 묻는다. 사회가 허용하는 소비(명품 접시, 미용 시술)와 조롱받는 소비(사이비 종교, 다단계)는 과연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얼마나 많은 돈과 마음을 쏟아붓는가?
책을 덮고 나면,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정말 별이 움직이는 걸까, 아니면 내가 움직이고 있는 걸까.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은, 정말 진짜일까.
현실도 환상도 결국 우리 마음이 만든 것일지 모른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믿음은 더 이상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불확실함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믿음의 형태가 무엇이든, 우리 모두는 무언가에 세뇌된 존재다.
이 글을 바탕으로 조금 더 긴 서평과 관련 책 이야기를 블로그에 남겨 두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gina_booklover/22394428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