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돌다리>
나는 시골에서 자라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내 발밑에 깔린 건 흙길이 아니라 아스팔트였고, 매일 건너던 건 개천 위의 다리가 아니라 인도 위 육교였다. 그래서일까. 이태준의 <돌다리>를 읽으며 처음 등장하는 시골 마을 풍경은 나에겐 낯설고 동시에 묘하게 그리운 감정으로 다가왔다. 단풍이 다 져버린 야산, 누렇게 바랜 나무들, 그리고 그 너머 공동묘지. 마치 내 기억 속엔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이상하게도 알고 있는 듯한 장면이었다.
주인공 창섭은 그 풍경 속에서 죽은 누이 창옥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쓰러진 동생을 살리지 못했던 무력감. 그 기억은 창섭을 의사의 길로 이끌었다. 나는 그런 경험이 없다. 가족의 죽음도, 시골의 묘지 풍경도 직접 겪어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섭의 감정은 내 마음 한편을 건드린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가 겪지 않은 것에도 그리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한 의사가 된 창섭은 병원 확장을 위해 고향의 논과 밭을 팔고 부모님을 서울로 모시려 한다. 효도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실리적 계산이 숨어 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조금 멈칫했다. 도시에서 살아온 내 가치관이 그와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편리함과 발전을 좇으며 살아왔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게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소설 속 아버지는 달랐다. 냇물 위에서 무릎을 걷어 올리고 돌다리를 고치고 있었다. 바로 옆에 새 나무다리가 있음에도 그는 굳이 낡은 돌다리를 다시 세웠다. 돌다리는 단순한 길이 아니었다. 조부가 상돌을 옮기기 위해 처음 놓은 다리, 세월이 흘러도 마을 사람들의 발걸음을 묵묵히 지켜온 다리였다. 그 다리 위에는 조상과 가족, 공동체의 기억이 고스란히 포개져 있었다.
아버지에게 땅은 재산이 아니었다. 천지만물의 근본이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손수 쌓은 돌담까지… 모든 것이 삶의 흔적이자 기도였다. 그 앞에서 창섭의 계산은 힘을 잃는다. 땅을 팔아 병원을 확장하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그의 논리는 옳지만, 아버지의 세계는 효율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품고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는 고쳐 놓은 돌다리 위에서 양치를 한다. 흙탕물이 씻겨 내려가듯 그의 마음 속 무언가도 함께 맑아진다. 아들은 도시로 돌아가고 마을은 변해 가지만, 돌다리만큼은 그가 지키는 한 무너질 리 없다는 믿음이 남는다. 그 믿음은 단순히 다리 하나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마음의 다리를 붙잡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오래 머물렀다. 내겐 돌다리의 추억이 없는데도, 마음 한켠이 뭉클해졌다. 도시의 다리는 지나치는 길이었고, 그 위를 걷는 나의 발걸음은 언제나 급했다. 하지만 이 돌다리는 다르다. 그 위를 건너는 사람들의 숨결과 시간, 뿌리와 기억이 겹겹이 쌓여 있다. 나는 처음으로 ‘돌다리’라는 풍경을 상상하며 걸음을 늦췄다.
“땅이란 천지만물의 근본이다.”
아버지의 이 말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쉽게 잊어버린 것들에 대한 경고처럼 들린다. 도시에서 살아온 나 역시 효율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쳐왔을까. 오래된 것, 느린 것, 사라져가는 것들을 나는 얼마나 보듬어왔을까.
돌다리 위를 흐르는 물소리를 상상해 본다. 세대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그 위를 건넌다. 서로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해도, 발 아래 놓인 돌만큼은 묵묵히 그들을 이어 준다. 어쩌면 우리 마음 속에도 그런 다리 하나쯤은 있는 게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지나온 시간과 뿌리를 이어주는 다리 말이다.
이태준의 <돌다리>는 전통과 근대가 맞부딪히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효율과 발전의 이름으로 버린 것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이 글을 바탕으로 조금 더 긴 서평과 관련 책 이야기를 블로그에 남겨 두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gina_booklover/22394505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