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담 <멀고도 가벼운>
김유담의 소설 <멀고도 가벼운>을 읽는 동안, 나는 내 기억 속 가족들을 떠올렸다.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더 쉽게 간섭하고, 더 쉽게 비교하고, 더 쉽게 질투하는 풍경들. 그리고 그것이 ‘가족이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정당화되는 모습들.
나는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자랐다. 집성촌 같은 촘촘한 인간관계도 없었다. 하지만 명절마다 모이면 풍경은 다르지 않았다. 친척들 앞에 앉아 있으면 내 성적, 외모, 태도, 심지어 식성까지 비교당했다. “누구네 딸은 벌써 상을 받았다더라”, “넌 왜 그렇게 말이 없니”, “살이 좀 올랐네” 같은 말들이 웃음 섞인 농담처럼 오가지만, 그 말들 뒤에는 미묘한 경쟁과 우월감이 숨어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참는 법을 어릴 때부터 배워야 했다. 말끝마다 붙는 “우린 가족이니까”라는 말이 사실은 참아라, 이해해라, 다 받아들여라라는 뜻이라는 걸 어린 마음에도 알았다. 그리고 그 마음은 자라서도 지워지지 않았다.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모질게 상처를 주고, 더 큰 권리를 행사하려는 모습들을 나는 여전히 본다.
그래서 소설 속 혜옥 이모가 이해됐다. 그녀가 왜 그렇게 묵묵히 일만 했는지, 왜 결국 뉴질랜드로 떠나 돌아오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집성촌이라는 밀폐된 공간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이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느껴지는 한국식 가족문화, 비교와 체면, 그리고 그 속에 스며 있는 묘한 질투와 시기.
혜옥 이모가 보내온 양모 이불의 무게를 읽으며 나도 내 기억 속 무거운 공기를 떠올렸다. 무겁지만 따뜻했던 어린 시절의 어떤 순간들, 그리고 무겁고 차가웠던 순간들까지. 나를 덮어주던 그 무게가 때론 위로였지만, 때론 숨 막히는 족쇄이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연인의 집에서 처음 덮은 구스 이불은 가볍고 부드러웠다. 편안해야 할 그 가벼움이 오히려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오는 순간. 나 역시 그 감각을 안다. 무겁고 따뜻한 관계와 가볍고 낯선 관계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
SNS 속에서 본 혜옥 이모의 모습은 밝고 자유로웠다.
초록빛 초원 위에서 웃고 있는 얼굴은 더 이상 집성촌의 시선에 갇혀 있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정해진 관계. 나도 가끔 그런 거리를 꿈꾼다. 가까움이라는 이름으로 무겁게 얽힌 관계 대신, 멀지만 편안한 관계를.
이 소설은 내게 오래된 질문을 던졌다.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왜 서로에게 더 가혹할까. 그 무게는 사랑일까, 아니면 사랑을 빌린 또 다른 폭력일까. 멀리 있어도 다정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다정함이 때로는 가까움보다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멀리 있는 쪽을 택할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바탕으로 조금 더 긴 서평과 관련 책 이야기를 블로그에 남겨 두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gina_booklover/223946775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