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보다 무서운 건 언제나 소문이었다

김혜진 <동네사람>을 읽

by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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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진실보다 소문을 먼저 믿는다.

직접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데도, “그렇다더라”는 말 한마디가 어느새 사실이 된다. 그 소문은 빠르게 퍼지고, 목격자도 피해자도 가해자도 뒤바뀐다. 사건의 본질보다 무서운 건 그 뒤에 남은 시선이다.


김혜진의 소설 『동네 사람』을 읽으며 오래 묵혀둔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회사에서 작은 오해가 생겼을 때였다. 회의실에서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아무도 직접 묻지 않았지만, 눈빛 속엔 이미 ‘그런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이나 손끝을 만지며 숨을 골랐다. 사실은 간단했다. 내가 하지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미 나를 규정하고 있었으니까.


소설 속 인물도 그랬다. 막 이사 온 두 사람, 화자와 ‘너’는 동네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접촉사고가 일어났다. 할머니와 개는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다쳤대”라는 말 한마디가 동네 전체를 흔들었다. 빵집에서도, 목욕탕에서도, 골목을 지날 때도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을 따라붙었다. 그 시선은 말보다 더 빠르고, 더 무겁게 퍼졌다. 그리고 결국 그 시선이 진실을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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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가장 섬뜩했던 장면은 빵집이었다. ‘너’가 개도 멀쩡했고 할머니도 다치지 않았다고 설명할 때, 주인은 짧게 말했다.

“동네 사람 다 알아.”

그 순간 공기가 멈췄다. 빵을 고르던 손이 멈추고, 부드럽던 공간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누가 먼저라고도 할 수 없이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을 향했다. 사건이 아니라, 시선이 사건을 만든 순간이었다.


이 소설의 배경은 특별하지 않다. 평범한 골목, 작은 시장, 오래된 빵집. 우리가 사는 어느 동네나 다를 게 없다. 그래서 더 무섭다. 평범한 공간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너무 쉽게 소문을 믿고 시선을 던진다는 사실.


돌아보면 우리도 그 안에 있다.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회사 단톡방에서, SNS 피드에서.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그렇다더라”라는 말로 퍼져나가고, 그 사람의 하루는 이미 정해져 버린다. 누군가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는데, 소문 속에서는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린다.


나도 그런 순간을 겪어왔다.

때로는 소문의 대상이었고, 때로는 소문을 전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두 경우 모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말 한마디, 시선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김혜진의 『동네 사람』은 화려한 사건도, 극적인 결말도 없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소문과 시선이 어떻게 개인을 고립시키는지, 얼마나 쉽게 진실을 지워버리는지 보여준다. 책을 덮고 나서도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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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걸을 때마다 이 소설이 떠오른다. 평범한 풍경이지만 어쩐지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창문들, 길가의 작은 그림자들. 진실은 언제나 조용하고 소박하지만, 소문은 더 크고 요란하게 퍼진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된다.


진실보다 무서운 건, 언제나 소문이었다는 걸.




이 글을 바탕으로 조금 더 긴 서평과 관련 책 이야기를 블로그에 남겨 두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gina_booklover/223953352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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