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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울타리

일상과 관계

by 지나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절대 보여주지 않는 곳이 있다.

그곳은 나만의 생각이 숨 쉬고, 나만의 감정이 안식을 찾는 자리다. 나는 그곳을 ‘사유 공간’이라 부른다.


어떤 이는 그 벽을 허물어야 진짜 관계가 시작된다고 믿고, 다른 이는 벽이 무너지면 자신이 부서질까 두려워한다. 벽은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거리이자, 숨 쉴 수 있는 울타리다. 나는 오래도록 그 위태로운 벽을 붙잡고 살아왔다. 밖에서는 웃고 대화를 나누지만, 안에서는 그 웃음이 내게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립된 느낌을 받기도 했고, 마음을 열었다가 상처를 받기도 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아야 숨이 트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털어놓은 뒤 더 무겁고 답답해지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직접 겪었다. 깊은 고민을 털어놓은 뒤, 상대의 시선이 미묘하게 바뀌는 순간을 마주하며 ‘비밀 없는 것이 꼭 좋은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안전한 울타리를 지키기로 했다. 그 울타리는 초대받지 않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않다. 내가 고른 향기와 음악으로 채워진 비밀 정원 같아서, 초대받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는 사적인 공간이다. 같은 고향이나 같은 직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한 덩어리로 묶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각자의 생각과 취향과 상처를 가진 독립된 존재다.


경계를 허물었더니 돌아온 것은 무단 침입과 상처뿐이었다. 그 흔적은 오래도록 마음 한구석을 어지럽혔다. 이제는 과한 요구가 들어오면 단호히 말하려 한다. “그건 말하고 싶지 않아. 내 사생활이야.” 이는 무례가 아니다. 내 울타리에 보내는 경고다.


벽은 관계를 끊는 장치가 아니라, 관계를 오래 지켜주는 기둥이 될 수 있다. 벽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오래 바라볼 수 있고, 함께할 수 있다.

나는 이 울타리를 지키며, 떨리는 마음으로도 조금씩 경계를 말할 예정이다. 불안도 있지만, 분명한 건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울타리 안에서야 나는 편안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사유의 정원을 조용히 기록한다. 글이란 내 안의 경계와 온도를 재는 도구다. 기록을 통해 나는 다시 나를 만나고, 타인과의 거리를 온전히 조절할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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