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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이와 함께한 시간, 나를 돌아보다

일상과 관계

by 지나

몽이와 함께한 시간은 언제나 눈부셨다. 작은 발자국 하나하나가 우리 집의 계절을 바꿔 놓았고, 그 발자국 위로 쌓인 해가 어느새 열다섯이 되었다.


13년 전이었다. 우연히 인터넷 게시판에서 글 하나를 보았다. 사정이 생겨 이제는 함께할 수 없다며 새로운 가족을 찾아달라는 사연이었다. 사진 속에는 크림빛 털을 가진 작은 치와와가 있었다. 눈빛이 유난히 맑고 순한 아이였다. 어린 딸이 사진을 보자마자 말했다.

“엄마, 우리가 키우면 안 돼?”


그 말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몽이를 가족으로 맞이했다. 입양하던 날, 전 주인은 몽이를 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 그 눈물을 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 아이를 평생 지켜주겠다고.


몽이는 소심하고 겁이 많았지만 한없이 순했다. 집에는 금방 적응했지만 단 한 가지, ‘남자’를 특히 ‘어른 남자’를 무서워했다. 전 주인도 그랬다 했다. 학대한 적은 없는데도 유독 남편에게만 경계심을 가졌다고. 우리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동물을 좋아했지만 장난기가 많아 놀래키거나, 동작이 커서 다가가기만 하면 몽이는 꺄갱 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렸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조금 가까워졌다. 남편이 누워 있으면 슬그머니 다가와 팔을 핥기도 하고, 간식을 건네면 조심스레 받아먹는다. 그래도 눈을 마주치면 여전히 피해자의 눈빛을 남긴다. 그 눈빛 속에 세상과 맞서온 몽이의 시간이 묻어 있었다.


몽이는 참 건강한 아이였다. 먹성도 좋았고, 작은 몸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달렸다. 입질도 없고, 밥상에 달려드는 일도 없었다. 배변도 잘 가려 실수한 적이 거의 없었다. 다만 겁이 많아 발톱을 깎거나 양치, 목욕을 할 때면 온몸을 덜덜 떨며 버티곤 했다. 그런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워 우리 가족은 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몽이가 몇 달 전부터 자는 동안 코를 심하게 골기 시작했다. 처음엔 귀엽다고 웃어넘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른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밥도 잘 먹고 산책도 좋아하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몽이는 병원 앞에만 가도 사시나무처럼 떠는 아이라 조금 더 지켜보자고 마음을 달랬다.


그러던 어느 날, 거실을 걷던 몽이가 갑자기 쓰러졌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본능처럼 손이 먼저 움직였다. 작은 가슴을 압박하고, 입을 맞춰 숨을 불어넣었다. 몇 초 뒤, 몽이가 눈을 떴다. 물을 마시고 평온하게 앉아 있는 아이를 보며 안도했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큰일이다. 심장병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 함께했던 나리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년 반 동안 앓던 그 시간, 새벽마다 찾아오는 발작과 실신에 나는 거실에 매트를 깔고 나리와 함께 잠들었다. 심장병은 한 번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 힘겨워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간절했다.

몽이는 그래선 안 됐다.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에도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아이. 부드럽고 건강한 털을 가진 아이. 우리 곁에서 조금만 더, 아니 훨씬 더 오래 웃으며 있어야 할 아이였으니까.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몽이와 함께한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일이 곧 나를 기록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사랑을 글로 남기는 순간, 나는 다시 나를 만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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