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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던진 한마디, 잊고 있던 나

프롤로그

by 지나


어쩌면 글쓰기는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나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 다시 백지 앞에 앉는다.


뭔가 따뜻한 글을 쓰고 싶었다.

MBTI 검사에서 나는 ‘계획적인 로봇’이라 불리는 ISTJ라는 결과를 받았다. 한동안은 그 틀에 나를 맞추며 살았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규정하며 상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내게 물었다.
“엄마도 상상을 하네? 엄마는 ‘만약에’라는 걸 전혀 안 해본 줄 알았어.”


그 말에 멈춰 서서 학창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순정만화를 기다리던 아이, AFKN 라디오에서 뉴키즈 온 더 블록 노래가 나오길 귀 기울이며 밤을 새우던 아이, 대학에 가면 입고 싶은 옷을 상상하며 웃고 떠들던 아이. 나는 분명 상상으로 가득한 소녀였다.


언제부터 이렇게 건조해졌을까. 결혼, 육아, 일 모두에 열정을 잃고, 무기력에 빠져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던 시절이 길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세상을 멈추게 했다. 사람들과 만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내겐 오히려 편안함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다시 듣고, 그림을 그리며 잊었던 꿈들을 다시 떠올렸다. 화가, 기자, 서점 주인… 오래전의 나는 분명 꿈이 많던 사람이었다.


잘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좋아서 계속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펼쳐 읽고, 손으로든 키보드로든 조금씩 필사하며 기록을 쌓아간다. 그리고 그 기록 속에서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제는 따뜻한 글, 솔직한 글, 기쁨과 한숨이 뒤섞인 진짜 나를 담은 글을 쓰고 싶다. 서툴고 투박해도 괜찮다. 그것이 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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