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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티, 세대를 나누는 언어의 두 얼굴

사회와 시선

by 지나


최근 자꾸 귀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다. 바로 ‘영포티(Young Forty)’다. 젊은 사십대를 뜻하는 말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긍정적인 이미지가 떠올랐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지만, 건강하게 젊음을 유지하는 사람들. 그런데 최근 게시물들을 살펴보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젊은 층에서 쓰는 ‘영포티’는 부정적인 뉘앙스였다. 나이 먹은 주제에 젊어 보이려고 발악하는 중늙은이들. 이런 식의 비꼼이 많았다. 누가 언제 어디서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특정 계층이나 나이대를 가리키는 말들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특히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이유가 뭘까.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어떤 부류를 지칭하는 단어는 대부분 언론이 만든다고. 언론이 정의를 내리고 그 말로 기사를 쓰면 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X세대, MZ세대, Z세대, 알파세대처럼 태어난 연도별로 나누기도 하고, ‘맘충, 틀딱충, 급식충’처럼 혐오 표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제는 ‘영포티’가 그 타깃이 된 듯하다.


왜 대한민국의 언론은 시민을 돕기보다, 편 가르기를 통해 이용하는 걸까?

영포티만 해도 그렇다. 어느 사회든 주류를 이루는 세대는 대체로 사오십대다. 경력도 쌓이고 경제적 기반도 갖춘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언론은 이들을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현 상황에서 레거시 미디어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들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면, 영향력을 빼앗아 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론이 정의하는 ‘늙은 주제에 젊은 흉내 내는 영포티’.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2025년 현재의 영포티는 단순히 흉내 내는 세대가 아니다. 그들은 원래 그렇게 살아왔다. 진심으로 관심이 있고,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X세대부터 달랐다. 트렌드에 민감했고, 그 시절 어른들에게는 버릇없고 희한한 세대로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급변하는 시대를 따라잡으며 살아왔고, 최신 유행에 관심을 두는 건 이미 습관이 되었다. 삶이 바빠 속도는 예전 같지 않더라도, 멋을 부리고 새로움을 좇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지금은, 나이에 맞는 방식으로 옷을 입고 액세서리를 하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세월 앞에서 신체가 늙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의학의 도움을 받아도 예전 그대로일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살아온 경험에서 쌓은 노하우 덕에, 지금 나이에 맞게 생활을 선택하는 영포티들이 있다면, 비난이나 조롱은커녕 오히려 칭찬받아야 하지 않을까?


자녀와 소통할 수 있는 부모, 젊은 세대와 대화가 가능한 기성세대. 그들이야말로 희망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런 사실은 간과한 채, 무조건 서로를 헐뜯고 편을 가르는 분위기를 조장한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나이 든다. 그럼에도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듯한 지금의 풍경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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