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장과 성찰
엄마는 어릴 때부터 나를 늘 “이기적인 아이”라고 불렀다. 이유는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이기적인 게 아니라,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게 태어났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주의’라는 말이 낯설었다. 심리학이나 생활 철학 같은 개념도 흔하지 않았기에, ‘이기적’과 ‘개인주의적’은 거의 같은 의미처럼 쓰였다. 아니, 사실 개인주의라는 말은 들어본 적조차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누구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는데 왜 나를 이기적이라 했을까? 그래서 가족이나 친척들 사이에서도 나는 늘 “차갑고 냉정한 아이”로 불렸다. 똑똑하다는 말조차 그때는 칭찬이 아니라 부담스러운 수식어였다. 낙인 효과는 무서웠다. 나는 점점 그 낙인대로 행동해야 하는 사람처럼 굳어졌다. 가만히 있는 나를 손가락질하는 어른들 앞에서 내 발언 기회는 거의 없었고, 억지로 입을 열면 “역시”라는 말이 먼저 따라붙었다. 그 말은 내 입을 막았다. 아, 말해 봤자 소용없구나.
하지만 세상을 만나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나는 점차 달라졌다. 나도 말을 제법 잘하는 사람이었구나. 사람들은 내게 칭찬도 하는구나. “공부 잘하는 애들은 원래 못됐어”라는 말까지 듣던 나는 점차 나 자신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물로 받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게 되었다. 그 속에서 처음으로 “개인주의”라는 개념을 마주했다. 일본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 속에 녹아 있던 그것은, 나와 너무 닮아 있었다. 아, 나도 이런 사람이었구나. 그 깨달음은 오랫동안 내게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던 낙인을 하나씩 지워 주었다. ‘이기적인, 정 없는, 차가운 아이’라는 말에서 한 음절씩 떨어져 나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기적인 면도, 개인주의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 팔은 안으로 굽고, 가재는 게 편에 설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서 더 두드러지는 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동시에 남으로부터 피해받고 싶어 하지 않는 태도다. 기성세대는 그것을 ‘요즘 애들 이기적이다’라고 폄하하지만,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시선이다. 공동체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부당하게 비난받아야 할까? 그저 자기 생활을 조금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은 것뿐인데.
나 역시 이제는 흰머리가 눈에 띄는 중년이 되었다. 웃프게도 변혁의 기로를 통과해 온 X세대. 하지만 나는 이 점이 좋다. 타고난 개인주의 성향 덕에 요즘 세대와 말이 잘 통하고, 변화와 기술에 잘 적응하는 것도 편하다. 예전처럼 나를 알아주지 않던 시대보다 지금이 훨씬 재미있고 공감할 일도 많다.
새로운 건 배우면 되고,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 노력만 하면 내 경계선을 지키면서도, 네 경계선도 존중할 수 있는 시대. 나는 지금이 좋다. 그리고 더 이상, 개인주의가 이기적이라는 이유로 비난받지 않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