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장과 성찰
고등학생 때 나는 대학생이 되면 어른일 줄 알았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마주한 3,4학년 선배들은 나와는 차원이 다른 진짜 어른 같아 보였다. 스무 살을 넘기면 당연히 철이 들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될 거라 믿었다. 그 시절의 나는 내가 40대, 50대가 될 거라는 사실조차 실감하지 못했다. 막연히 ‘그때쯤이면 안정적이겠지’라고만 생각했다. 생각도, 생활도 어른다운 안정감으로 채워질 거라고.
하지만 막상 30대를 지나 40대에 이르렀을 때, 내 앞에 나타난 건 기대와는 달랐다. 신체는 나이를 따라가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정신은 여전히 제자리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마음가짐은 어린아이 같았다. 애가 애를 키운다는 말이 딱 맞았다. 철없는 어른인데도 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아는 척, 옳은 척, 당연한 척을 했다. 수틀리면 억지를 부리고, 화를 내며, 나보다 약한 존재에게 세상을 더 살았다는 이유로 텃세를 부리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옳은 일이 아니었다.
이제야 알겠다. 나는 늦은 나이에 철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만큼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날들이 많았다. 왜 그렇게 삶에 애착도 목표도 열정도 없이 살았을까. 왜 늘 남과 비교하며 내 마음을 쪼아대기만 했을까. 40대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나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기는 내게 전환점이었다. 모두가 고립되어 있을 때, 나는 온라인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응원하고 위로하며 살아가는 풍경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상에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그들 덕분에 용기를 얻어 나도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툴고 어색했지만, 챌린지라는 이름 아래 도전하고 또 도전하며 목표를 세웠다. 작고 사소한 성취들이 내 삶을 조금씩 바꿔주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히 나이와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옳은 판단만 내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실수를 하더라도 거기서 배울 줄 아는 사람, 잘못을 인정하고 고칠 줄 아는 사람, 나보다 어린 이들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 편협했던 내 생각의 틀을 깨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 그것이 진짜 어른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숫자가 쌓였다고 해서 그것을 무기처럼 휘두르는 게 아니라, 그 무게감을 짊어질 줄 아는 사람 말이다.
나는 아직 그런 어른은 아니다. 다만 노력은 하고 있다. 여전히 딸보다 못한 생각을 하고, 사소한 일에 꽁해하며 자존심을 세우기도 하지만, 나는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대화하면 즐거운 어른,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아줌마, 언젠가는 유쾌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내 주위에는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이 드물다. 오히려 반대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반면교사 삼아 내 길을 걸으려 한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떠올리며 “그분은 즐거운 사람이었어”라고 말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인생 아닐까. 나는 오늘도, 유쾌한 할머니가 되기 위해 조금씩 연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