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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은 조금 긴 시다

책과 글쓰기

by 지나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 시작한 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났다.

예전에도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저 좋아한다는 마음에 비해 많이 읽지는 않았다. 지금은 도서 인플루언서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 이름이 주는 책임감에 기대어 예전보다 훨씬 더 꼼꼼히 읽으려 애쓰고 있다.


책을 고르는 데는 뚜렷한 기준이 없다. 관심 있는 분야라면, 혹은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이 보이면 망설임 없이 집어 든다. 아직 펼치지 못한 신간도, 베스트셀러도, 오래 전 사두고 책장에 꽂아둔 책도 많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 읽지 못할 걸 알면서도 몇 권씩 책상 위에 꺼내놓고 나면 괜히 마음이 풍족해진다. 읽고 싶은 책들이 나를 기다려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해진다.


나는 독서를 하며 ‘몇 권을 읽었는가’를 세어 본 적이 없다. 지식을 확장하는 공부라면 분명히 권수가 중요할 것이다. 같은 분야의 책을 계단처럼 차근차근 쌓아올려야 기반이 단단해질 테니까. 하지만 내가 주로 읽는 건 소설이고, 그 세계는 조금 다르다. 한 권의 책에서 얻는 감정과 사유가 내게는 숫자보다 중요하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은 한국 소설에 눈을 뜨게 되었다. 사실 그 전까지는 고전이나 해외 작가들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요즘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으며 생각했다. 아, 한국이 노벨문학상을 낼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구나. 김애란, 최은영, 성해나, 강화길, 예소연, 편혜영, 서유미… 이름만으로도 묵직한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나는 매번 새로운 감탄을 했다. 주제의 다양성과 깊이는 결코 얕지 않았고, 무엇보다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가 강렬했다.


흥미로운 건, 내가 더 끌린 쪽이 장편이 아니라 단편이었다는 사실이다.

짧아서 읽기 쉽겠다고 생각했지만, 첫인상은 정반대였다. 읽고 나면 오히려 “이게 뭐였지?”라는 물음표만 남았다. 그런데 리뷰를 쓰기 위해 필사하고, 다시 읽고, 또 읽다 보니 이야기가 조금씩 달리 다가왔다. 한 번 읽었을 때는 놓친 인물의 표정이 두 번째 읽을 때는 선명해졌고, 세 번째 읽을 때는 왜 그 장면에 특정한 색깔이 등장했는지까지 보였다. 단편은 길이가 짧아도 가슴에 오래 남았다. 짧지만 묵직했고, 문장 몇 줄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요즘은 단편집을 골라 읽는다.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집 속에는 주옥같은 작품이 많아 책을 고르기도 한결 수월하다. 나는 단편을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단편은 길이가 조금 긴 시와 같다. 시에 이야기를 입히면 단편이 되고, 단편을 시처럼 읽으면 더 깊은 울림이 된다.


만약 단편이 사람이라면 내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짧다고 쉽게 보지 마. 한 번 읽고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알 수 없을 거야. 처음엔 줄거리만 따라가도 좋아. 두 번째는 인물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세 번째는 배경과 디테일까지 보게 될 거야. 내 의도대로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다만 내 속에 담긴 세계를 함께 걸어주면 돼.”


오늘도 나는 책상 위에서 또 하나의 단편을 펼치고, 조용히 필사한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이 매력에서 당분간은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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