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온유 <내가 있어야 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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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블로그에 올린 글을 다시 정리해 보았다. 백온유 작가의 책은 가족이라는 주제로 북클럽을 시작하면서 고르게 되었다. <페퍼민트>에서도 그랬듯, 이번 단편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도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주인공 하나는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피해자였지만, 트라우마로 인해 친구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또 다른 피해자가 된다. 그리고 가해자들의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학폭 피해자였던 하나가 또 다른 친구에게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여러 명이 동시에 혜신을 괴롭히는 것이 정당하다는 식으로 말하니까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수가 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증오하고 괴롭히는 데는 분명 마땅한 이유가 있다고 여겨야 내 마음이 편했기 때문일 것이다. p. 248
옳지 않은 말도 계속 들으면 옳게 들리는 법이다. "너는 못생겼어. 너는 그런 거 못 해. 너는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 이런 부정적인 말을 반복적으로 들으면 아무리 외모가 출중하고 능력 있고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도 결국 그 말에 묻혀버린다. 더군다나 하나는 어릴 때 겪었던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살아남았다고 해서 더 사랑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들에게 부담스럽고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내가 특별한 이유 없이 친구들과 불화할 때, 손끝이 야무지지 않아 어딘가 어설프고 엉성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때,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고 행동이 굼뜰 때, 엄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분명 어릴 때는 안 그랬는데 연기를 많이 들이마신 후로 뭔가가 달라진 것 같다고.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몰랐다. 나 또한 커가면서 느꼈다. 나는 애매하게 애매했고 모호하게 모호했다. p. 243
하나의 엄마는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려 한 것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안타까운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겠지만,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딸을 충분히 보듬어 주지 못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보다 용기가 없다며 다그쳤고, 하나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학폭 사건으로 강제 전학을 가야 했을 때도 하나와 상의 없이 이모가 있는 캐나다로 보낼 결정을 내려버린다.
"자신이 없어도 용기를 내야지. 뭐가 그렇게 무서워? 캐나다 가도 안 죽어. 하나야, 넌 한번 죽었다 살아났잖아. 그러면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하는 거 아니야?" p. 246
하나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한 번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언제나 가족들에게 골칫덩어리였고 불편한 존재라고 느껴왔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이모와 이모부와 함께 지내면서 처음으로 살만한 삶을 경험하게 된다. 평생 모르고 살았던 감정들, 그러니까 소속감, 안정감, 자부심 같은 것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모와 이모부는 하나가 캐나다로 오게 된 이유를 알면서도 먼저 묻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을 열고 스스로 이야기를 꺼내자, 이모부는 조용히 등을 도닥여주었다. 마치 얼마나 힘들었냐는 듯, 잘 견뎌냈다는 듯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그저 상대방의 말을 온 마음으로 들어주고, 공감하며,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따뜻하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을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이든 친구든 가까운 사람일수록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는 대신 조언과 충고를 내놓곤 한다.
아픈 사람들은 자신의 아픔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공감해 주고, 안아주고, 곁에 있어 달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 가깝다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제는 더 이상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