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지 못한 아이들, 그리고 여전히 무너지는 마음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읽고

by 지나


2025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1년이 되었다.
이 봄이 오면, 저는 마음이 먼저 무너진다.

11년 전 그날, 내 딸은 여덟 살이었다.
아직 작고 여린 아이였고, 나는 그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였다.
그날 뉴스 화면에서 침몰하는 배와 구조되지 못한 아이들의 이야기,
바닷속에서 끝없이 기다리던 부모들의 절규를 보며,
나는 TV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 무력감과 비통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누군가의 아이가 아니라, 그냥 ‘아이’라는 존재 자체가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 딸이 열일곱이 되던 작년,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은 하루하루 흔들렸다.
그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떠났던 그 봄날, 내 아이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웃고 있었겠지.
그 평범했던 하루가 영원히 멈춘 시간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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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는 그런 마음을 품고 펼친 책이다.
2014년 가을, 그날의 진실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시기에
열두 명의 작가가 마음을 모아 써 내려간 문장들이 담겨 있다.
그 문장들은 하나하나 다 꺼지지 않는 촛불 같았다.
작지만 깊은 빛, 흔들리지만 끝내 꺼지지 않는 마음.

읽는 내내 저는 다시 오래된 슬픔과 마주해야 했고,
그 슬픔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의 마음으로 읽은 문장들

김애란 작가의 글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타인의 몸 바깥에 서서,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유가족이 아닌 ‘제3자’인 제가 이렇게 아픈데,
그분들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뎌내고 계실까.
그분들의 삶을 상상해 보면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누군가는 “가족을 팔아먹는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정말로 잔인하다.
자식을 잃고도 살아가야 하는 부모에게 그 어떤 손가락질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 상처는 이용하거나 꾸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가족도, 그런 아픔을 ‘팔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박민규의 글, 『눈먼 자들의 국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박민규 작가의 글은
한 문장, 한 문장마다 날이 서 있다.

그는 말한다.
세월호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글 속에는 당시의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무리한 증축, 평형수 제거, 노후한 선박, 해경의 무대응, 그리고 구조되지 않은 아이들.
그 모든 과정에서 ‘구조는 없었다’는 냉정한 진실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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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용기

문학은 슬픔을 덜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곁에 오래 머무를 수 있게 해 준다.
잊지 않도록, 함께 기억하도록, 그리하여 다시 외면하지 않도록.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면 지금도 저는 눈물이 난다.
비슷한 나이의 딸을 둔 엄마로서, 이 사건은 내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매년 4월이 되면, 다시 그 바다를 마주 보는 것 같다.

진실은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참사가 ‘사건’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만큼은
더 이상 누구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 구명조끼 입어...”

그 아이들이 남긴 마지막 말.
자신보다 친구를 더 먼저 떠올렸던, 그 따뜻하고도 가슴 아픈 말.
우리는 그 마지막 문장을 아직도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한다.

이 일은 누구의 정치도, 누구의 이념도 아니다.
이건 인간의 존엄,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월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상처이다.
그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그저 조용히, 옆에 서주자.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응답일지도 모른다.


" 기억하겠습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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