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모순>에서 드러나는 모순들
양귀자의 <모순>은 많은 독자들이 반복해서 읽는 이상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이는 단순히 내용이 쉽고 접근성이 좋아서가 아니라, 특히 여성의 삶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안진진은 25세의 미혼 여성으로, 연애와 결혼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나이다. 흔히 "여자는 어떤 남자와 결혼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남녀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문제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남성이 가장의 책임을 짊어지던 전통적 역할에서 벗어나, 부부가 함께 경제적·가정적 역할을 나누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진진의 아버지는 전통적인 가장의 역할에서 오는 무게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가정을 떠났다. 처음에는 며칠씩 자리를 비우다가 점차 그 기간이 길어졌고, 결국 오 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진진은 아버지의 가출 원인을 단순한 무책임이 아니라, 어머니와 가족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사랑이 자신을 옥죄는 감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지나친 사랑이 결국 폭력과 도피로 이어졌다는 이 해석은 사랑의 또 다른 양면성을 보여준다.
진진에게는 결혼을 고민하게 만드는 두 명의 남자가 있다. 김장우는 야생화를 찍는 사진작가로, 현실보다 이상을 쫓으며 소외된 존재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따뜻한 청년이다. 반면, 나영규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철저한 계획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진진은 장우의 자유롭고 감성적인 면모에 끌리지만, 영규의 철저한 계획성과 안정감에는 거리감을 느낀다. 장우와의 데이트에서 식사비를 먼저 계산하고, 한여름 에어컨이 고장 난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해도 설렘을 느끼는 반면, 영규와의 안정적인 만남에서는 감정적인 동요가 없다. 이는 진진이 사랑에서 예측 불가능한 낭만과 설렘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진진은 장우에게 느끼는 감정을 사랑이라 정의하고, 영규에게 느끼는 감정은 유사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그녀의 사랑이 단순한 애정(애로스)보다는 보호하고 챙겨주고 싶은 모성적 감정에 더 가깝기 때문일 수 있다. 장우에게는 자신이 그의 모든 것을 보살피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지만, 영규에게서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영규의 지나치게 계획적인 성향이 감정의 여지를 줄여 버린 탓이다.
나 역시 진진과 같은 시절을 겪었다. 하지만 사람은 살아가면서 환경에 맞게 변하기 마련이다. 특히 결혼 후에는 낭만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예쁜 것보다 실용적인 것을 선택하게 되고, 이상보다는 현실적인 안정이 더 중요해진다. 그렇다고 현실이 무미건조한 것은 아니다. 현실적인 삶 속에서도 나름의 낭만과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나는 진진의 선택을 응원한다. 영규와의 결혼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문제만 일으키는 남동생, 중풍과 치매를 앓는 아버지, 생활에 치여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는 새로운 가정의 갈등 요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알고도 결혼을 결심한 영규는 자신의 가정을 책임지고 보살필 것이다. 또한, 진진은 자신의 어머니나 이모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갈 것이다.
결혼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랑과 낭만일 수 있지만,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데에는 믿음, 신뢰, 이해, 그리고 현실적인 안정이 필수적이다. 진진은 어머니와 이모의 삶을 보며 이러한 요소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안정된 삶을 선택했다. 장우를 사랑했지만 결국 영규와 결혼을 결정한 그녀를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다. 삶은 언제나 이러한 모순의 연속이니까.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한그것, 그것을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 못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를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 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 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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