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시작된 재택근무

여기서도 현장직은 기본 권리를 쟁취해 나가야 했다.

by 정긍정

2019년 11월에 일을 시작하여, 두 달이 막 지났을 때 코로나가 발발되었고, 정확히 4개월 후인 2020년 2월부터 급격히 확진자가 늘어나며 이곳의 삶도 송두리째 바뀌기 시작했다. 먼저,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의 경우 재택근무가 의무화되었는데, 우리 회사는 사실상 우리 팀, 제조팀, 로지스틱 팀, 즉 현장직을 제외하고는 모든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알다시피 유럽의 초기 대응은 기가 막힐 정도였기에, 코로나 초반 2개월 정도는 "손 잘 씻고, 사회적 거리 잘 유지하세요."라고 자주 상기시켜주는 게 전부였다. 감기 따위의 전염병이라고 쉽게 본 것이 한몫 단단히 했으리라. 정치인들도, 회사 담당자도, 전문가라는 사람들까지도 마스크 사용이 필요 없다는 것을 주장하며, 마스크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해서만 한참 논쟁을 벌였는데, 알고 보니 그건 의료진이 사용할 마스크조차도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3월 중순부터는 학교, 식당 및 카페 등등을 완전히 폐쇄하는 락다운이 시작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제공되는 마스크는 여전히 없었기에,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천 마스크를 겨우 하고 다녀야 했다. 4월 달에는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았는데, 현장직을 위한 회사의 대처 방식이 전무했기에 나의 평정심이 요동치고 인내심이 바닥을 치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우리를 보호하는 기본적인 조치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처럼 "비지니스는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말만 뻐꾸기처럼 내뱉으며 우리 팀 전원을 출근하도록 하였다. 매니저와 그 아래 코디네이터는 예외였다. 그들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아마 현장의 고충이 보이지 않았으려나. 위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대응을 기다리려니 속이 타들어가, 내가 총대를 매기러 했다. 로테이션 재택근무를 하면서 우리가 일하는 공간 내 인원수를 줄이자는 것이 아이디어였고, 잘 조정하면 우리 업무의 30퍼센트 이상은 재택근무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설득을 해보기러 했다. 코디네이터에게 메일을 보냈고, 매니저와 상의해 본다고 얘기를 한 후 정확히 2주가 지나서야 로테이션 재택근무를 시범 운영 해보기러 결정이 났다. 정말 속 터지는 결정 속도다. 결과는, 재택근무를 시행해도 업무 효율성에는 지장이 없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5월쯤부터 마스크가 제공되기 시작했고, 마스크 할 필요 없다던 때는 언제고 마스크가 제공이 되는 순간부터 모든 회사 구역에서 마스크가 의무화가 되었다. 안 그래도 물 한 잔 마시기 힘든 제조 현장 일인데, 점점 "의무"라는 이름으로 금지되는 것만 늘어갔다. 우리 팀원들끼리 운동 동기 부여하는 모임이 있어서, 점심시간마다 달리기를 하러 가며 리프레쉬를 해오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샤워시설 이용이 금지되었다. 사실상 점심시간에 동료들끼리 운동을 가지 말라는 소리였다. 또, 흡연 시설은 아예 폐쇄되어 흡연자들은 갈 곳을 잃었고. 휴식 공간도 인원 제한이 생겨, 모든 인원이 휴식시간에 제대로 된 휴식도 취하지 못하게 되었다.


개개인만큼, 많은 회사들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잘 안다. 하지만, 직원들을 계속 일 시키고 싶다면 이런 시국에 직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회사의 역할이 아닌가? 남녀 급여 차이가 적은 국가, 복지국가 벨기에에서도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기본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쟁취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는 근로자에게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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