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나이나 성별에 따라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념이 있다. 혹은, 스무 살이 되는 순간이 중요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후부터는 약간 "늙어간다"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20대 초반의 친구들이 나이를 많이 먹었다며 투덜거린다거나, 50대의 여배우가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이슈의 중심이 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스무 살이 지나면 나이가 든다고 생각하지만, 나이보다 어려 보이기는 해야 한달까. 성별에 따라 이렇게 행동해야 하고 저렇게 행동해야 한다더라 하는 블라블라는 말하기 입만 아프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 믿고싶)지만,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통성명 다음으로 나이를 트고 우리네 행동이나 말투를 결정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우리는 나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어 보인다.
뭐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하고 의문을 품기 힘든 이런 통념들에 나는 지칠 때도 있었고, 나만은 이 통념에 따르지 말아야지 하고 피하고 싶었던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조선소에서 나이, 성별 관련 에피소드가 많았지만,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너희 아버지 몇 살이고"라고 묻던, "너희 아버지한테도 그렇게 행동하냐"라고 묻던, 동등한 위치에서 일을 해야 했던 팀원이 내가 버릇없다며 얼굴을 붉히던 때이다. 그러면서, 내 얼굴에 침 뱉는 흉내도 했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걸 보니 다행히 난 이 경험을 에피소드로 잘 소화시킨 듯하다. 이런 에피소드들에 영향을 받아 우리 팀 디렉터 아래 모두가 동등한 벨기에 회사 생활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참 신기하게도 이런 한국식 (혹은 유교식) 통념에 편리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고 한 9개월쯤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회사생활을 했다. 다른 이들은 이런저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관찰을 하면서 나 스스로를 어떻게 노출시킬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내 진짜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어떤 부분에서는 진지하게, 혹은 장난치며 넘어가야 하는지 등등, 한국에서처럼 상황에 맞게 주어지는 정답이 없었기에 오래 관찰하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야 했다. 예를 들면, 나의 아버지 나이대의 동료와 얘기를 할 때, 한국에서의 나였다면 대부분 맞장구를 치며 상대방이 대화를 주도하도록 두는 편이었고, 항상 예의를 갖추고 겸손이 미덕임을 잊지 않았다. 공감할 수 없는 얘기를 해도, 내가 공감이 되는지 안 되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나이로 결정된 태도가 없다 보니, 모든 것이 "사람 대 사람"이다. 나이가 많은 동료가 일은 이렇게 해야 한다, 인생을 물이다라고 얘기를 해도, 내가 그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나의 의견을 드러낼 줄도 알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작은 주제에도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느끼는지에 스스로 주목해야 하고, 명확히 알아야 하고, 잘 표현해야 했다.
나를 딸처럼 예뻐해주는 루이스
품질 검사 업무는 작업자의 품질 문제를 찾아내고 시정을 요구해야 하는 경우가 잦은데, 이 상황이 주어졌을 때 자주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몇몇은 품질 문제를 보여줬을 때, 방어 기질을 가지거나 남 탓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보았을 때 내 마음은 좁아진다. 게다가 동일한 품질 문제를 되풀이하고, 실수가 잦은 작업자에게는 나 스스로 못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결코 겸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 아니었구나, 드디어 깨달았다. 그리고 스스로를 다시 다잡는다. 다잡으면서도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항상 예의 바른 사람 이어야 하나?"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내 행동, 말 하나하나에 스스로 생각이 너무 많은 때가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내 행동, 말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이건 내 모습이 아닌데', '다르게 말했어야 했는데'라고 고민하기도 했다. 하, 상대방의 나이에 따라 내 태도를 결정하던 때가 편한 점이 있구나 싶었다.
결론은, 역시 많이, 깊게 생각해 본 것이 득이 됐다. 예의 바름은 나이나 성별과 관련 없는 하나의 성품이었고, 나는 항상 예의 바른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은, 예의 바르게 상대방을 배려하면서도 솔직하게 내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앞으로도 분명히 내가 믿어오던 나와 충돌하는 나의 모습을 마주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진짜 내 모습을 마주할 준비가 됐기에 괜찮다. 확실한 건, 매일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고민하고 노력할 마음이 충분히 있는 나라는 거다.